남궁선생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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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 남궁선생전
성소부부고 / 남궁선생전
한문학
작품
조선 중기에 허균(許筠)이 지은 한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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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허균(許筠)이 지은 한문소설.
내용

조선 중기에 허균(許筠)이 지은 한문소설,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제8권 문부(文部) 제5의 전(傳) 속에 있는데 5편의 작품 중에서 가장 길다.

「홍길동전」과 더불어 허균소설의 쌍벽을 이룬 「남궁선생전」은 전기체소설이 갖는 하나의 전형(典型)과 같이, 실재하였던 남궁 두(南宮斗)라는 인물을 대상으로 하여 사건전개의 동기를 잡고, 그 속에 작자의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

작품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라도 임피(臨陂)에 살고 있던 부호 남궁 두는 나이 서른에 진사가 되어 서울에 살고, 다만 애첩 하나를 시골집에 두어서 농장을 경영하였다. 그러다가 애첩이 그의 이성(異姓) 당질(堂姪)과 간통하게 되자, 남궁 두는 활로 두 남녀를 쏘아죽여 논에 묻고 서울로 돌아왔다. 일이 발각되자 남궁 두는 붙잡혀 갖은 악형에 처해졌으나, 그 아내가 포졸에게 술을 먹이고 빼내었다.

남궁 두는 금대산(金臺山)으로 들어가 중이 되었다가, 무주 치상산(雉裳山)에 옮겨가서 한 장로를 만나 수련의 비결을 받고는 도를 통하였다. 장로가 모든 귀신을 접견할 때에 조선이 왜적에게 병화를 입어서 7년 동안을 소란하였으나, 나라가 망하지 않았음이 다행스럽다고 한다. 남궁 두는 스승의 명령에 의하여 다시 속세로 돌아와 장가들어 살림살이를 하였다. 때마침 작자인 허균이 공주에서 파직되어 부안에 살고 있었다. 남궁 두는 그를 찾아가 선가(仙家)의 비결을 주었다 한다.

전반부에서는 남궁두가 겪은 다양한 삶을 전기적 수법으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는 도가의 도술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불우한 인간상을 제시하고 현실 초극 의지도 반영하였으며, 인간에 대한 인식을 확대를 시도하였다. 이 작품의 주제를 ‘인(忍)’이라고 볼 수도 있고, 일사(逸士)소설로서 자아(自我)와 세계(世界)의 강한 대립의 양상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또는 당시의 혼란한 사회에 대한 간접적 비판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혹은 작자 자신의 자화상이거나, 미래상이 아닐까 하는 지적도 있다. 이 작품 속에는 도술적(道術的)인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수법은 당나라 때의 전기소설(傳奇小說)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혼란한 사회상을 풍자하고 작자의 이상을 경험할 수 없는 신비한 곳에 두어 해결하려 하였던 현상이다.

작품 말미에 작자의 논평이 붙어 있어 작자의 사상과 감정에 대한 후인의 이해를 돕고 자신의 이론을 간접적으로 전한다. 그리고 작품의 결구나 사용된 비유 등을 살펴보면, 이른바 도문일치(道文一致)에 접하는 작자의 문학관을 읽을 수 있고, 『장자(莊子)』의 우언(寓言)을 모방하여 고도의 은유법을 구사, 작자의 의도를 충분히 발휘하는 수법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작자의 문장기교가 그만큼 뛰어났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도가적 이야기는 사건전개의 한 양식에 불과하다.

참고문헌

「성소부부고」(허균, 『허균전집』, 성균관대학교대동문화연구원, 1972)
「교산의 남궁선생전연구」(김현룡, 『단국대학교국문학논집』 5·6,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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