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에 대하여 지은 전이다. 『율곡집(栗谷集)』( 『율곡전서(栗谷全書)』) 권14∼16 잡저에 실려 있는 작자의 유일한 전이다.
김시습의 선세가계(先世家系)에서 시작하여, 어린 시절 학문을 처음 익히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와 단종의 손양(遜讓)과 세조의 즉위에서 비롯된 김시습의 행적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불문(佛門)에 의탁하여 방외(方外)에 놀았으나 김시습의 중심은 언제나 유자(儒者)의 위치에 머물렀음을 지적하였다.
학문과 문학적 재능에 대하여 세밀히 기록하는 과정에서 더러 세상에 전해지는 이야기 등도 수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 김수온(金守溫) · 서거정(徐居正) · 남효온(南孝溫) · 정창손(鄭昌孫) · 유자한(柳自漢)과의 일화는 대체로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말년에 김시습이 안씨(安氏)를 취하여 가정을 이루었던 사실과 이자(李耔) · 박상(朴祥) · 윤춘년(尹春年)에 의하여 김시습의 시문집이 전하게 된 내력을 밝혔다. 말미에는 이이 자신의 김시습에 대한 평을 기록하고 있다.
「김시습전」은 전통적인 전의 양식에 충실하여 사실을 기록하는 데에 치중하였다. 따라서 일화로 남는 김시습의 행적 정리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설화로 유전하는 김시습의 일생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위하여 엄격한 비평적 안목에 의하여 김시습을 “재주가 그릇[器] 밖으로 넘쳐흘러서 스스로 수습할 수 없으리만큼 되었으니, 그가 받은 기운이 경청(輕淸: 곡조 따위가 맑고 가벼움)은 지나치고 후중(厚重)은 모자라게 마련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의(義)를 세우고 윤기(倫紀: 윤리와 기강)를 붙들어서 그의 뜻은 일월과 그 빛을 다투게 되고, 그의 풍성(風聲)을 듣는 사람들은 겁쟁이도 용동하는 것을 보면 가히 백세의 스승 되기에 남음이 있다.”고 한 말은 김시습의 내면세계를 중심으로 한 평가일 것이다.
또한, 이이는 김시습이 영특하고 예리한 자질로써 학문에 전념하여 공과 실천을 쌓았다면 그 업적은 한이 없었을 것이라면서 애석해하였다. 불우한 삶을 영위하였던 한 인물에 대한 올바른 기록을 전이라는 양식을 빌려 쓴 하나의 전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