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전서』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이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14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1611년(광해군 3)에 박지화 등이 시집 1권과 문집 9권으로 최초의 『율곡집』을 간행하였다. 1682년(숙종 8)에 박세채가 속집 4권, 별집 4권, 외집 2권을 편집, 간행하였다. 1749년 이재가 기존 글들을 한데 합하고 『성학집요』, 『격몽요결』 등을 첨가해, 23권 38책의 『율곡전서』를 간행하였다. 1814년(순조 14) 습유 6권과 부록의 속집이 부가되어 현재의 44권 38책에 이르는 『율곡전서』가 완성되었다.
시집은 박지화(朴枝華) 등이 편집하고, 문집은 박여룡(朴汝龍) 등이 성혼(成渾)의 도움을 받아 편집해 1611년(광해군 3)에 해주에서 목판으로 발간한 것이 최초의 『율곡집』인데, 그것은 시집 1권과 문집 9권으로 된 적은 분량이었다.
여기에는 누락된 것이 많았으므로 1682년(숙종 8) 박세채(朴世采)가 빠진 것들을 모아 속집 4권, 별집 4권, 외집 2권을 편집, 간행하였다. 위의 제본(諸本)은 모두 이이의 중형(仲兄)인 번(璠)이 기록해 놓았던 초본(草本)을 토대로 여러 사람들이 보관하고 있었던 기록들을 모아 엮은 것이었기 때문에 체재가 일관적이지 못하였다.
그래서 1742년(영조 18) 이재(李縡)가 이이의 5대손인 진오(鎭五) 등과 상의해 시집 · 문집 · 속집 · 외집 · 별집을 한데 합하고, 『성학집요』 · 『격몽요결』 등을 첨가해 1749년 『율곡전서』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간행하였다. 이것은 활자본으로서 총 23권 38책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1814년(순조 14) 다시 습유(拾遺) 6권과 부록의 속집이 부가되어 해주에서 중간되었는데, 비로소 44권 38책에 이르는 현재의 『율곡전서』가 완성을 보게 되었다.
『율곡전서』는 책머리에 전서수정범례(全書修正凡例)가 있다. 권1은 사(辭) 2편, 부 3편, 시 132수로 되어 있다. 권2는 「호당야좌(湖堂夜坐)」 · 「유삼청동(遊三淸洞)」 등 176수의 시이다.
권3은 「논요승보우소(論妖僧普雨疏)」 · 「논윤원형소(論尹元衡疏)」 · 「사정언소(辭正言疏)」 · 「간원진시사소(諫院陳時事疏)」 · 「육조낭관논심통원소(六曹郎官論沈通源疏)」 · 「옥당진시폐소(玉堂陳時弊疏)」 · 「진미재오책차(陳弭災五策箚)」 등 11편의 소 · 차이다.
권4는 「옥당논을사위훈차(玉堂論乙巳僞勳箚)」 · 「의진시폐차(擬陳時弊箚)」 · 「논붕당소(論朋黨疏)」 등 8편의 소와 차이다. 권5는 「옥당진계차(玉堂陳戒箚)」 · 「만언봉사(萬言封事)」 · 「진해서민폐소(陳海西民弊疏)」 등 8편의 소 · 차이다. 권6은 「청물과애소(請勿過哀疏)」 · 「옥당논군덕사사차(玉堂論君德四事箚)」 · 「진성학집요차(進聖學輯要箚)」 · 「사간원청면학친현신차(司諫院請勉學親賢臣箚)」 등 8편의 소 · 차이다.
권7은 「사대사간겸진세척동서소(辭大司諫兼陳洗滌東西疏)」 · 「사간원걸변통폐법차(司諫院乞變通弊法箚)」 · 「사간원청진덕수정차(司諫院請進德修政箚)」 · 「진시폐소(陳時弊疏)」 · 「진시사소(陳時事疏)」 · 「사이조판서소(辭吏曹判書疏)」 등 17편의 소와 차이다.
소나 차에는 사직소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 정치적 폐단과 해독을 시정할 것을 적극 요청하는 상소문이 대다수이다.
권8은 「청혁양종선과계(請革兩宗禪科啓)」 · 「진황해도민폐계(陳黃海道民弊啓)」 · 「복명후진일로민폐계(復命後陳一路民弊啓)」 · 「육조계(六條啓)」 등 20여 편의 계와 2편의 의(議)이다. 사직계(辭職啓)가 일부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민폐를 시정하게 하려는 계로 이루어져 있다.
권9는 「상퇴계이선생(上退溪李先生)」 · 「여기명언대승(與奇明彦大升)」 · 「답박화숙순(答朴和叔淳)」 · 「답성호원혼(答成浩原渾)」 등의 서 17편이다. 권10은 「답성호원(答成浩原)」 등 9편의 서이다. 권11은 「답송운장익필(答宋雲長翼弼)」 등 39편의 서이다. 권12는 「답정계함철(答鄭季涵澈)」 · 「여이몽응제신(與李夢應濟臣)」 등 30편의 서이다.
서에는 시사 · 문후에 관한 것보다는 성리학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와 예제(禮制)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엿보인다. 특히, 성혼과의 사이에서 오고간 서신들은 이이의 성리학적인 입장을 밝히는 데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이이는 사칠론(四七論)이나 인심도심(人心道心)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해두고 있다.
권13은 「본국제세제황제문(本國祭世帝皇帝文)」 · 「본국청개종계주문(本國請改宗系奏文)」 · 「예조답대마도주서(禮曹答對馬島主書)」 · 「기우제문(祈雨祭文)」 등 11편의 응제문과 「성학집요서(聖學輯要序)」 · 「격몽요결서(擊蒙要訣序)」 등 7편의 서(序), 「구용첩발(九容帖跋)」 · 「학부통변발(學部通辨跋)」 등 5편의 발, 「희천양현사기(熙川兩賢祠記)」 · 「보인당기(輔仁堂記)」 등 9편의 기이다.
권14는 「인심도심도설(人心道心圖說)」 · 「극기복례설(克己復禮說)」 등 설 6편과 「부자문장찬(夫子文章贊)」이라는 찬 1편, 「사암금명(思菴琴銘)」 1편, 「제퇴계선생문(祭退溪先生文)」 · 「제청송선생문(祭聽松先生文)」 · 「성대곡사우제문(成大谷祠宇祭文)」 등의 제문 16편, 「기자실기(箕子實記)」 · 「김시습전(金時習傳)」 · 「이씨감천기(李氏感天記)」 · 「논심성정(論心性情)」 · 「기대학소주의의(記大學小註疑義)」 · 「회재대학보유후의(晦齋大學補遺後議)」 · 「역수책(易數策)」 · 「천도책(天道策)」 · 「공맹언성도군려의(孔孟言性道軍旅疑)」 등 18편의 잡저이다.
권15는 「동호문답(東湖問答)」 · 「학교모범(學校模範)」 · 「은병정사학규(隱屛精舍學規)」 · 「은병정사약속(隱屛精舍約束)」 · 「시정사학도(示精舍學徒)」 · 「문헌서원학규(文憲書院學規)」 등이다. 주로 교육에 대한 열성과 그 입장을 알 수 있는 잡저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권16은 서원향약(西原鄕約) · 해주향약(海州鄕約) · 사회계약속(社會契約束) 등 주로 지방민을 유교적 도덕 이념에 따라 교화하고 훈련시키려는 향약에 관한 잡저 5편이다. 이렇게 이이는 성리학이나 경전에 관한 연구는 물론이고, 그러한 학문이 이념으로 삼는 것이 넓게 시행되게 할 수 있는 방략을 구상하거나 규범을 설정하는 데에도 폭넓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권17은 신도비명 8편과 묘갈명 9편이고, 권18은 「정암조선생광조묘지명(靜菴趙先生光祖墓誌銘)」 등 14편의 묘지명과 7편의 행장이다. 권19∼26까지는 「성학집요(聖學輯要)」이다.
권27에는 「격몽요결(擊蒙要訣)」과 「제의초(祭儀鈔)」가 실려 있다. 「격몽요결」은 초학자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들을 차례로 밝혀 배움으로 인도하려는 글이다. 「제의초」는 각종 제사의례에 관한 것들에 대하여 논한 것이다.
권28∼30까지는 「경연일기(經筵日記)」로서 1565년부터 1581년까지 경연에서 행했던 경서의 강의나 논의된 모든 기사를 기록하였다. 권31 · 32에는 어록(語錄)으로 김진강(金振綱) · 박여룡 등이 이이의 말을 기록한 것이 많고, 다른 사람들의 문집에 실려 있는 이이의 말을 채집해 놓은 것도 있다.
권33은 부록으로 세계도(世系圖)와 연보 상(上)이며, 권34는 연보 하(下)와 문인록(門人錄)이다. 권35에는 문인 김장생(金長生)이 쓴 행장이다. 권36은 대제학 이정구(李廷龜)가 지은 시장(諡狀)과 영의정 이항복(李恒福)이 지은 신도비명이다.
권37은 「묘표음기(墓表陰記)」이다. 권38은 「제가기술(諸家記述)」 · 「전후변무장소(前後辨誣章疏)」 등을 포함해 구성되어 있다. 권33∼38까지는 모두 부록에 속한다. 권39부터 끝까지의 6권은 습유이다. 습유 권1은 부 5편, 시 202수이고, 권2는 소 · 차가 7편, 계가 47편, 의(議)가 3편, 서(書)가 16편이다. 습유 권3은 28편의 서(書), 30편의 응제문, 7편의 서(序) 등으로 구성된다.
습유 권4에는 잡저가 15편 실려 있다. 여기에는 「제생상읍의(諸生相揖義)」 등 예의 절차를 다루고 있는 글과 「소아수지(小兒須知)」와 같이 초학자가 범하기 쉬운 잘못을 경계하고 있는 글 등이 있다.
특히 「논사칠설(論四七說)」 같은 것은 기대승(奇大升)과 이황(李滉)의 사칠설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이것에 관한 이이의 입장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습유 권5는 잡저가 5편인데 「신선책(神仙策)」 · 「기도책(祈禱策)」 · 「절서책(節序策)」 · 「수요책(壽夭策)」 · 「시폐칠조책(時弊七條策)」 등으로 모두 왕의 물음에 답해 지은 것들이다. 습유 권6은 잡저가 12편이고 묘지명이 1편이다.
이상이 전체 44권에 달하는 『율곡전서』의 개괄적인 내용이다. 이이는 학문을 일상 생활과 동떨어진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매일 매일의 자질구레한 생활 속에서 실천되고 연마되는 구체적인 수신(修身)의 방법으로 보았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이른바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역시 별다른 것이 아니라…… 날마다의 행동거지가 일에 따라 각각 그 합당함을 얻게 하는 것일 따름이다(所謂學問者 亦非異常別件物事也……皆於日用動靜之間 隨事各得其當而己). ”라는 「격몽요결서」의 구절 속에서 단적으로 확인될 수 있다. 이이는 학문을 실제적인 실천을 강조하는 생활 윤리적인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유학 본연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학자라 하겠다. 학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러한 기본적인 태도는 그의 성리학자로서의 위치에 손상을 입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그의 성리학적 철학 체계에 견고한 현실적 토대를 확보해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성리학자로서의 이이는 이황과는 다른 입장을 취한다. 이황이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 입각해 이와 기 양자에 다같이 운동 능력을 부여하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이이는 기에만 운동의 능력을 부여하는 기발설(氣發說)을 주장한다.
이이는 기가 움직이면 항상 이가 타는 것이므로 이와 기는 어느 것이 우선한다고 할 수 없으며 항상 함께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따라서 이이에게 이와 기는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것이다.
기의 운동은 이에 의해서 주재를 당하지만 “기가 없으면 발(發)할 수 없고, 이가 없으면 발할 이유가 없다(非氣則不能發 非理則無所發, 율곡전서 권10, 答成浩原). ”는 그의 말을 통해서 볼 때 여기에서도 이와 기가 함께 작용해 운동해 간다는 이기이원적 일원론의 사고 방식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이는 이를 일반성 · 보편성을 띠는 것으로 간주했고, 기를 특수성 · 상대성을 띠는 것으로 보았다(理通氣局說). 이이의 이는 형이상자(形而上者)이고, 기는 형이하자(形而下者)이다. 이는 형태가 없는 것이고, 기는 형태가 있는 것이다.
이이의 성리학 체계에서 실제로 운동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기이지만, 기가 운동하도록 만드는 것은 이다. 그러므로 기에만 운동 능력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보면 주기적(主氣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배면에서 이에 의한 주재가 행해진다는 측면에서 보면 주리적(主理的)이라고 하겠다.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에 관한 이이의 입장은 칠정 속에 사단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사단은 칠정 중에서 선(善)한 측면만을 가려 뽑아서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사단이나 칠정이 모두 ‘기발이승(氣發理乘)의 결과라는 것이다.
사단과 칠정은 모두 성(性)이 발해서 정(情)으로 된 것이지 그 사이에 층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이에 의하면, 칠정은 심(心)에서 발한 모든 것의 총체이며 인심 · 도심의 합(合)이다. 인심과 도심은 심에서 발해 의(意)로 된 것으로, 이미 발생한 정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혹은 인심으로 되기도 하고 혹은 도심으로 되기도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의 이와 같은 성리학적 학술 체계는 특히, 성혼과의 서신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율곡전서』는 1958년에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영인, 간행해 보급했는데, 여기에는 「율곡선생의 생애와 업적」이라는 안인식(安寅植)의 소론이 붙어 있다.
번역으로는 1961년에 고려대학교의 한국고전국역위원회에서 성리학에 관한 부분만을 발췌해 번역하고, 주(註)를 붙인 『율곡성리학전서』가 있고, 1968년에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발행한 고전국역총서 속에 들어 있는 『국역율곡집』이 있다.
또한 1972년 대양서적(大洋書籍)에서 펴낸 『한국명저대전집』 속에 정종복(鄭鍾復)이 번역한 『율곡집』이 들어 있다.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발행한 『국역율곡집』은 2권으로 되어 있으며 주로 사상 관계에 중점을 두고 경학 · 성리학적 입장을 살펴볼 수 있는 글들과 어록 · 행장이 번역되어 있다. 책머리에는 이병도(李丙燾)의 해제가 실려 있다.
정종복이 번역한 『율곡집』은 사칠론 관계의 글들과 『격몽요결』, 몇 수의 시 · 부 · 소와 『성학집요』 등을 발췌해 번역했고, 책머리에는 해제가, 뒤에는 연보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