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탄생은 6·25전쟁이 계기가 되었다. 물론 전쟁 직전에도 공군여군의 창설과 양성 노력 등 관련 활동은 있었으나 전쟁발발과 함께 종료되었다.
1948년 말경 중등학교 이상의 학교에 학도호국단을 조직하고, 그들을 훈련시킬 지도교관 양성을 위해 전국 중·고·대학의 체육교사를 중심으로 단기간의 군사교육을 시키고 소속 학교에 배속시켰는데 이것을 배속장교라고 하였다. 여자배속장교는 1949년 6월 30일 부산사범 교사 문일련 등 32명을 최초로 입교시켜 예비역 소위로 임관시켰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여자배속장교 훈련대장이었던 김현숙 예비역 중위는 대통령에게 여자의용군 모집을 건의하여, 대구와 부산 등지에서 모병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1950년 9월 1일부로 육군 제2훈련소 예속 여자의용군 교육대가 창설되었고, 1950년 9월 4일부로 입대식이 실시되었다. 여자의용군은 정훈대·첩보대·전투부대·예술대 등에 편성되어 큰 활약을 펼쳤다.
해군 여군은 1950년 8월 31일 해병대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제주도에서는 중학교 3학년부터 6학년(당시 중학교는 6년제)까지의 학생과 교사, 청년 등 3천여 명을 모집하여 3개 보병대대를 증편하였다. 이때 입대한 대원들 속에는 126명의 여자의용군이 포함되어 있었다. 해병대 여자의용군들은 교육 수료 후 해군본부와 통제부에 배치되었으며 간호원, 홍보요원, 예비사무원의 업무를 수행했다.
공군은 공군 창군 이전인 1949년 2월 15일 당시 육군항공사령부 예하에 ‘여자항공교육대’가 발족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때 여학교 5·6학년 재학생 중 학교장 추천과 선발시험을 통해 최종 여자항공병 제1기생 15명이 이등병으로 입대하였다. 이들은 기본 군사훈련과 통신·정비·기상·조종 과목 등에 관한 이론 및 실습교육을 받았다. 1949년 10월 1일부로 공군이 창설되자 여자항공교육대는 ‘여자항공대’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1950년 2월과 4월에 걸쳐 학과시험을 통과한 39명을 2기생으로 선발하였다. 이후 일부 여군은 비행단에 복귀하여 기상·통신분야 등에서 근무하다가, 1954년 10월 김경오 대위의 전역으로 여군 운영이 중단되었다.
간호장교는 1948년 5월 1일 제1육군병원 창설 후 군 병원에 필요한 전문 간호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면허를 소지한 간호사를 간호장교로 임관시키면서 탄생하였다. 이때 간호장교 후보생제도를 도입하여 1948년 8월 26일 31명을 소위로 입대시켰다. 이는 한국 첫 여군의 탄생이자 여성장교의 임관이었다.
이렇게 전쟁으로 급속히 늘어나던 여군은 1951년 6월 23일 공산측이 휴전을 제안하며 전쟁이 소강상태에 놓이게 되자 급속도로 그 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결국 전방 전투부대에 배치된 여군들을 철수시켰고, 1951년 8월을 전후하여 여군의 대량제대가 실시되었다.
1951년 11월 15일에 여자의용군 훈련소가 해체되고 육군본부 고급부관실 내에 여군과가 설치되어 각 국감실 및 부대에 배속된 여군의 인사행정업무를 담당·수행하게 되었다. 여군과는 1954년 1월 1일부로 인사국 여군부로 개편되었으며 1959년 1월 1일부로 육군본부 편제상의 기구가 전면적으로 개편되어 참모부장제도가 채택됨에 따라 인사국이 인사참모부로 승격하였고, 이에 따라 여군부도 여군처로 개편되었다.
여군들은 행정업무지원에 국한되었던 여군활용을 확대하고자 여군으로서 임무수행이 가능한 분야를 개척하게 되었다. 1955년 5월 20일 교육총감부 산하에 여군장병 양성만을 위해 서울 서빙고에 여군훈련소를 정식으로 재창설하였다. 1970년에 이르러 여군의 활성화를 위해 인사참모부 여군처를 해체하고 육군본부 직할부대로 여군단을 창설하였다. 여군전담부대인 여군과, 여군부, 여군처, 여군단에 이르는 시기에 군의 행정지원 업무는 물론 심리전요원 활동, 감찰장교 특파활동, 장교 월남전 참가, 전산, 사격분야 활동, 공수특전요원 배출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이 확대되었다.
사회의 여성 인력활용 확대 추세와 병행하여 1990년 후반 공군과 해군의 문호가 개방되면서 새로운 여건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1989년 육군은 여군병과를 해체하고 보병을 비롯한 제병과로 전과한다는 ‘여군장교 인사제도 개선안’을 수립하게 되었다.
50년간 육군에 머물던 여군이 1997년에 공군사관학교에 여생도가 최초로 입대하였다. 이어 1998년 육군사관학교, 1999년에 해군사관학교가 여자 생도에 대한 문호를 개방하고 2001년 공군·해군 여군사관후보생을 배출함으로써 여군이 근무하지 못하는 영역이 사라지게 되었다. 2002년에는 최초로 간호병과에서 여군장군이 탄생하였고, 여군창설 60주년이 되는 2010년에는 전투병과에서 최초의 여성장군이 탄생하는 등 여군의 제도 및 기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