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해협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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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군 백두산 함이 1950년 6월 26일 북한의 무장병력을 태운 함선을 부산 앞바다에서 격퇴시킨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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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민국 해군 백두산 함이 1950년 6월 26일 북한의 무장병력을 태운 함선을 부산 앞바다에서 격퇴시킨 전투.
내용

백두산함(PC-701함)은 해군장병들과 국민들의 성금으로 미국에서 구매한 함정으로서 한국 해군 최초의 전투함이자 유일한 전투함이었다.

백두산함은 6월 25일 오전 진해통제부사령관으로부터 동해로의 긴급 출동 명령을 받았다. 백두산함은 해군본부의 작전명령에 따라 구월산정(YMS-512) 및 고성정(YMS-518)을 지휘하여 동해안의 묵호 근해로 출동, 적 함선의 상륙을 저지 또는 격멸하는 임무를 받았다.

6월 25일 오후 8시 경 연기를 내며 오고 있는 미식별 선박이 발견되었다. 국기와 선명도 표시되지 않은 선박의 갑판 뒤쪽에는 중기관총 2정과 수병복을 착용한 수많은 무장 병력이 승선해 있었다.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북한 정규해군 및 육전대의 복장으로 인해 북한의 선박임을 확신한 백두산함장은 적선으로부터 이탈하여 “확인된 선박은 북한의 1,000톤급 수송함정이며, 약 600명의 북한군이 승선한 채 남하 중에 있음. 상륙을 기도하는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해군본부에 타전 보고하였다.

해군본부는 백두산함에서 보고한 상황을 경무대에 있는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국방부의 지시를 기다렸다. 국방부 장관은 “백두산함이 접촉 중인 선박이 적 공산군 함정으로 판단되면 쏘라”고 지시했다. 백두산함은 명령에 따라 위협사격을 개시했다. 그러자 적선은 선수갑판의 주포와 중기관총으로 대응사격을 해왔다.

백두산함은 적선을 향해 주포를 발사했다. 이때 백두산함의 뒤를 따라 진해를 출발한 고성정(YMS-518)이 현장에 도착하며 후방에서 적선에 대해 포를 발사하였다. 드디어 오전 1시경 적선은 포를 맞고 침몰하였다.

평가

백두산함의 대한해협 전투승전은 거의 무방비상태로 놓여있던 부산항의 안전을 확보한 전략적인 사건이었다. 이 대한해협전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의를 갖는다. 첫째, 미군이 참전하기 이전 우리 해군이 단독으로 적 선박을 격침시켰다. 둘째, 부산으로 향하는 군수물자와 증원 병력을 위한 해상교통로의 안전을 확보했다. 셋째, 남해안 상륙을 기도한 적의 게릴라 부대를 격멸하여 후방교란을 미연에 방지하였다. 즉 한국전쟁의 발발 초기 후방으로 침투하는 북한군을 격퇴함으로써 부산 및 남해안의 안전을 확보한 의미있는 전투였다.

참고문헌

『6·25전쟁과 한국해군작전』(해군본부, 2010)
『6·25전쟁사 2 -북한의 전면남침과 초기 방어전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5)
집필자
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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