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基). 1990년 중요민속자료(현, 중요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길 언덕 양편에 각각 세워져 있으며, 벅수(마을 어귀나 다리 길가에 수호신으로 세운 사람의 모양의 형상. 나무나 돌로 만드는데, 눈이 불거지고 어금니가 내뻗쳤으며, 혀가 늘어져 무섭게 생겼다.)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한 이 일대를 속칭 벅수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서로 마주하고 있는 벅수에는 ‘南正重(남정중)’과 ‘火正黎(화정려)’라는 글씨가 각각 음각 되어 있다.
남정중은 높이 174㎝, 너비 37㎝이며 머리에는 복두형의 관모를 쓰고 있다. 치켜 올라간 눈썹, 긴 귀, 큰 코, 툭 불거진 눈망울, 그리고 드문드문 이를 드러낸 입, 턱수염 등이 이 벅수의 생김새이다.
이에 반하여 화정려는 높이 173㎝, 너비 39㎝로 크기는 비슷하다. 머리에는 역시 관모를 쓰고 있으며, 갈래갈래 올라간 눈썹, 긴 귀, 매부리코, 왕 방울눈, 이를 드러낸 입 등 마주하는 벅수와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화정려의 뒷면에는 ‘戊申四月二十八日午時立(무신4월28일오시립)’이라는 음각이 있고 ‘化主□主事□金□昇(화주□주사□김□승)’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제작연대를 알려주는 단서가 되기는 하나, 이상의 내용만으로는 어느 해 무신년인지 연대를 밝힐 수가 없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남정중이 하늘을 맡고(天神), 화정려는 땅을 관장(地神)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중국 삼황시대(三皇時代)에 황제가 중(重)에게 준 벼슬이름인 남정(南正)이 사천(司天)의 직책이고 여(黎)에게 준 벼슬이름이 사지(司地)의 직책이라는 『사략(史略)』의 기록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벅수는 특정마을에 소속되어 있는 마을 벅수 또는 마을장승으로서의 기능은 발견되지 않아 노변장승이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마을주민에 따르면 옛날 좌수영 성에는 동문ㆍ남문ㆍ서문 등 세 개의 성문이 있었고 각각 성문부근에는 수문장 및 방위신 구실을 하는 돌벅수가 있었으며, 그 돌벅수가 서 있던 자리는 지금의 덕충동ㆍ봉산동ㆍ연등동인데 그 가운데 동문의 벅수는 없어지고 연등동과 봉산동의 벅수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