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상부(尙夫), 호는 치계(稚溪 혹은 痴溪). 첨정 여세침(呂世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승지 여숙(呂淑)이고, 아버지는 증 영의정 여순원(呂順元)이다. 어머니는 사인(舍人) 이영(李瑛)의 딸이다.
1591년(선조 24)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596년 사신의 일행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병조정랑·평안도도사·사간원정언·지평(持平)·장령(掌令)·직강(直講)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너그럽고 모질지 않아 화요(華要)의 직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었다.
1603년 밀양부사를 거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는데,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 전쟁을 마무리짓는 사신으로서 일본에 내왕하면서 포로의 쇄환 등에 공이 많았다. 연안부사가 되어서는 고을을 잘 다스려 여러 수령들 가운데 모범으로 뽑혔다.
후일 평안도안무사(平安道安撫使)를 지냈고, 1614년(광해군 6)에는 또다시 진위사(陳慰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1618년 공홍도관찰사(公洪道觀察使)를 역임하였다. 탁월한 외교가로서 전란 이후의 처리를 담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방관으로서도 선정을 베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