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수. 일명 ‘초정가(椒井歌)’라고도 한다. 1800년(정조 24)에 간행된 초간본 『노계집(蘆溪集)』과 1904년에 중간된 『노계집』의 각각 제3권 가편(歌篇)에 실려 전한다.
『노계집』의 기록에 의하면, 이 작품은 1621년(광해군 13) 작자가 정구(鄭逑)와 함께 울산의 초정(椒井)에 가서 지은 것이다. 그러나 『노계집』의 ‘신유년(1621)’은 정구가 죽은 한 해 뒤이고, 「한강연보(寒岡年譜)」에는 ‘기미년(1619)’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노계집』의 제작연대 기록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신농씨(神農氏) 모ᄅᆞᆫ 약(藥)을 이 초정의 숨겨던가, 추양(秋陽)이 ○오ᄂᆞᆫᄃᆡ 물속의 잠겨시니, 증점(曾點)의 욕기기상(浴沂氣像)을 오ᄂᆞᆯ 다시 본덧ᄒᆞ다.”는 작자가 존경하던 정구와 초정온천에서 목욕을 하며 자신들을 『논어』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공자와 증점의 사제 사이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이다.
“홍진(紅塵)에 ᄯᅳ지 업셔 사문(斯文)을 닐을 삼아, 계왕개래(繼往開來)ᄒᆞ야 오도(吾道)를 발키시니, 천재후(千載後) 회암(晦菴) 선생을 다시 본 덧 ᄒᆞ여라.”라는 둘째 수는 정구를 주자에 빗대어 찬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