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훈도

  • 역사
  • 제도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시대 한성의 사역원(司譯院) 및 지방 관서의 외국어 통역 및 교육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던 종9품 관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한성의 사역원(司譯院) 및 지방 관서의 외국어 통역 및 교육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던 종9품 관직.

내용

사역원에 한학훈도 4인, 몽학·왜학·여진학훈도 각 2인씩을 두었고, 부산과 제포(薺浦)에 왜학훈도 1인, 평양과 의주에 한학·역학훈도 각 1인씩을 두었다.

조선 후기에는 제포의 왜학훈도를 혁파하고 대신 경상도 통영 및 전라도 좌수영·우수영 그리고 제주에 한학·왜학훈도 각 1인씩을 두었다. 또, 함경도와 평안도의 안주·선천·강계에 각 1인의 한학훈도와 의주에 여진학훈도 1인을 증치하였다.

사역원의 한학훈도는 1393년(태조 2)에 처음 설치되었고, 왜학훈도는 1415년(태종 15), 몽학훈도는 1411년, 여진학훈도는 1434년(세종 16)에 각각 설치되었다.

1413년에는 양반 출신의 문관으로 한학훈도의 일부를 맡게 하였는데 그 뒤 한학훈도 4인 중 2인은 반드시 문관으로 임명하게 하였다. 이들은 서울과 지방에서 각기 해당 외국어 전공 생도들을 교육시키고 그 지역의 통역업무에 종사하였다.

참고문헌

  • - 『태조실록(太祖實錄)』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대전회통(大典會通)』

  • - 『만기요람(萬機要覽)』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 『역주경국대전(譯註經國大典)』(한우근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 -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보이는 역학서(譯學書) 서명(書名)에 대하여」(송기중, 『국어학』 14, 1985)

  • - 「조선초기(朝鮮初期)의 기술관(技術官)과 그 지위(地位)」(이성무, 『혜암유홍렬박사화갑기념논총』, 197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