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원에 한학훈도 4인, 몽학·왜학·여진학훈도 각 2인씩을 두었고, 부산과 제포(薺浦)에 왜학훈도 1인, 평양과 의주에 한학·역학훈도 각 1인씩을 두었다.
조선 후기에는 제포의 왜학훈도를 혁파하고 대신 경상도 통영 및 전라도 좌수영·우수영 그리고 제주에 한학·왜학훈도 각 1인씩을 두었다. 또, 함경도와 평안도의 안주·선천·강계에 각 1인의 한학훈도와 의주에 여진학훈도 1인을 증치하였다.
사역원의 한학훈도는 1393년(태조 2)에 처음 설치되었고, 왜학훈도는 1415년(태종 15), 몽학훈도는 1411년, 여진학훈도는 1434년(세종 16)에 각각 설치되었다.
1413년에는 양반 출신의 문관으로 한학훈도의 일부를 맡게 하였는데 그 뒤 한학훈도 4인 중 2인은 반드시 문관으로 임명하게 하였다. 이들은 서울과 지방에서 각기 해당 외국어 전공 생도들을 교육시키고 그 지역의 통역업무에 종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