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석인본. 후손 재묵(載默)·재원(載源)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유만식(柳萬植)의 서문과 권말에 재묵·재원의 후서(後敍)가 있다. 전주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은 시 13수, 소(疏) 14편, 계(啓) 15편, 서(書) 1편, 서(序) 1편, 기(記) 3편, 전(箋) 2편, 의(議) 8편, 권2는 부록으로 연보, 사전(史傳), 서술(敍述), 서대(犀帶)를 하사받았을 때 지은 제현(諸賢)의 서(書)와 시, 홍직필(洪直弼)이 쓴 대암사(大巖祠)의 축문, 후손 창식(昌植)이 찬한 행장, 장일상(張一相)이 찬한 신도비명, 유묵(遺墨) 1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집(遺集)이 있었으나 전해지지 않아서, 비사(秘史)에서 뽑고 소·계·전 등을 모아 다시 만든 것이다.
소는 1448년(세종 30)에 집현전직제학으로서 9차에 걸쳐 불당 건립을 중지하도록 건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척불(斥佛)의 소는 2년 뒤에도 다시 올렸는데, 세종의 윤허를 받지 못하자 그 때마다 사직소(辭職疏)를 올렸다. 세종 때 불교를 개혁하고 불서를 간행하는 등 불교가 자못 융성하게 되었는데, 이런 경향에 대한 유학자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밖에 삼강(三綱) 15조를 올린 소와 흥학(興學)에 대해 올린 소 등도 척불 관점에서 쓰여진 글들이다. 연보에는 한글 창제를 반대하여 최만리(崔萬理) 등과 함께 올린 소의 내용도 보인다.
전이나 의는 사창법(社倉法)·사체(史體)·복색(服色)·문과·시거(試擧)·노비·재산·입권(立券)에 대한 것이다. 「사전」은 역사서에 전한 그의 약력을 소개한 내용이다. 「서술」은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문헌비고』 등에서 그에 대한 내용만을 모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