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복이 1719년(숙종 45) 11월 4일부터 이듬해 3월 26일까지 청나라 연경(燕京)을 다녀오면서 여행과정을 기록한 일기책 및 떠나기에 앞서 당시의 중신(重臣)과 동료들로부터 받은 전별시문을 모은 첩, 그리고 주로 그가 받은 명현들의 간찰을 모은 첩으로 모두 3책 56장이다.
조영복은 1714년 예천군수로 있으면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후 1717년 전라우도어사로 임명되고, 이듬해 동래부사를 거쳐 1719년 승지가 되었고, 그해에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연행일록』은 조영복의 친필본으로, 1719년 11월부터 1720년 3월까지 그가 형조참의로 있을 때 동지부사(冬至副使)로서 정사인 좌참찬 조도빈(趙道彬) 등과 함께 연경을 다녀오기까지의 과정들이 기록되어 있다. 책의 첫 부분에는 정사 · 부사를 비롯하여 서장관(書狀官) 등 당시 수행했던 42명의 관직과 이름이 적혀 있다. 이어 임금을 배알하고 물품을 하사받고 모화관에서 중신들과 고별한 후 홍제원에서 출발하는 것에서부터 노정(路程)에서 일어난 일들과 그 지방의 인정과 풍속 등이 기재되어 있다. 지면의 여백에는 여행을 마치고 나서 느낀 감흥을 옮긴 운문(韻文)과 동행자들의 운에 차운(次韻)한 글들을 적어놓았다.
『연행별장』에는 김창집(金昌集) · 이이명 · 이건명(李健命) · 정호(鄭澔) · 민진후(閔鎭厚) · 신임 · 송상기(宋相琦) · 이관명(李觀命) · 이희조(李喜朝) 등 당시의 중신과 동료들로부터 받은 운문들을 모아 놓았는데, 증(贈) · 별(別) · 봉증(奉贈) · 송(送) · 봉신(奉贐) · 송별(送別) · 증별(贈別) · 봉송(奉送) 등 다양한 제명(題名)으로 되어 있다. 표지명에 ‘건(乾)’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2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간찰첩』은 총 34건 35장으로 되어있고, 송준길(宋俊吉) · 김수항(金壽恒)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조영복이 당대에 받은 간찰들로 1717년(숙종 43)과 1718년의 서간들이 많다. 노론 4대 신인 김창집 · 이이명 · 이건명 · 조태채(趙泰采)를 비롯하여 송상기 · 이희조 · 정호 · 민진후 · 김진규(金鎭圭) · 권상하(權尙夏) · 이여(李畬) 등의 필적을 볼 수 있다.
이 자료는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1988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연행일록』을 통해서 당시 중국과의 외교관계와 우리나라의 지방 풍속을, 『간찰첩』을 통해서 조영복의 교유상황과 명현들의 필적을 살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