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숭인상업학교(崇仁商業學校) 동창생인 박윤옥(朴潤玉)·김덕윤(金德潤)·지광호(池光浩)·김희만(金熙萬)·최병무(崔秉武)·김동순(金東舜) 등 6명은 1936년 6월경 ‘민족 대중, 특히 농민 대중의 지식 향상에 힘써 민족의식을 앙양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일맥회(一麥會)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이 회는 곧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얼마 뒤 자연 해산되고 말았다.
이를 기반으로 박윤옥 등이 1937년 2월 중순경평양의 지광호 집에서 일맥회의 전통을 계승, 보다 강력한 조직과 체계를 갖춘 결사인 열혈회를 조직하게 되었고, 회장에는 박윤옥이 선임되었다.
그리하여 이 회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일반 농민들에게 기독교를 전도하면서 민족·독립사상을 고양시킴과 아울러, 기술 및 경제력 향상을 도모하는 데 사업 역점을 두게 되었다.
이 때부터 이 회의 회원들은 단결력을 강화하고 사업내용을 토의하기 위해 여러 차례 모임을 가지면서 꾸준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8년 2월에는 최병무의 집에서 회원 8명이 모여 구체적으로 활동 전담부서를 분담하여 종교에 박윤옥, 문학에 김현주(金顯周), 작물(作物)에 김덕윤, 경제에 지광호, 축산에 김희만, 과수에 최병무, 농민문학에 이낙인(李洛仁), 교육에 김동순이 각각 선임되었다.
이에 10년을 기한으로 각기 담임 부서에 대한 연구와 지식 향상을 도모하기로 하였다. 나아가 열혈 회원은 모두가 농민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평양 부근에 농민 도량을 개설, 농촌 청소년을 교육시켜 이들을 중심으로 일거에 독립운동을 펴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1939년 11월 이 회의 중심 인물들이 일본 경찰에 거의 대부분 붙잡힘으로써 원대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