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1992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도동리 당산거리 당산나무 아래에 있는 마을장승이다. ‘도광 12년(道光十二年)’이라는 연호로 보아 1832년(순조 32)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빌던 당산터의 당산할아버지 나무와 함께 신앙되던 마을 신앙이 19세기 중반 두창(천연두)을 막기 위한 액막이 장승과 결합된 예로 볼 수 있다.
남장승인 할아버지장승은 북쪽을 향해 있는데, 자연석에 ‘동방대장(東方大將)’이라는 글자가 몸통에 새겨져 있으며 얼굴의 윤곽은 음양각(陰陽刻)으로 그렸다.
탕건을 쓴 듯한 긴 대머리에 초승달 눈썹, 둥근 안경을 쓴 듯한 달걀형 눈, 둥그스럼 하게 생긴 주먹코, 웃니를 서너 개 드러내 웃는 모습, 턱 아래 두줄로 내려뜨린 수염자국이 소박하고 성실한 농촌 할아버지를 닮았다.
몸체에 비하여 얼굴이 기형적으로 80㎝나 되게 크며, 땅에 묻혀 있어 전체 신장을 알 수 없으나 현재의 키는 지면에서 113㎝∼140㎝, 몸통 두께는 20㎝∼42㎝ 가량 된다.
여장승인 할머니장승은 몸통에 ‘서방대장 도광 12년(西方大將 道光十二年)’이라고 세로로 음각된 기년명(記年銘)이 있다. 이 장승은 두동강 났던 것을 복원한 것으로 몸통이 왼쪽으로 휘어져 있다. 얼굴 모습은 이마의 윗 부분이 세모꼴 형태의 자연석을 그대로 살렸다.
기러기가 나는 모습처럼 양 눈썹을 선각한 눈은 안경을 낀 듯한 동그란 왕눈이고, 주먹코, 둥글 네모나게 입 모양을 파내고 입 속에 요철 모양의 이빨 모양을 새겨 액과 살을 씹어 뱉을 듯한 익살스런 형태이다. 신장은 172㎝∼180㎝이고 두께는 42㎝∼75㎝로 중간 60㎝ 부분에서 깨어져 두동강난 부분을 시멘트로 이어 붙였다.
할아버지 장승과 할머니 장승 사이에 자그마하게 원통형으로 거칠게 다듬어진 애기장승(말막뚝)의 자연석이 있다. 전에는 당산터에서 당산굿을 쳐 마을의 풍년과 안녕, 제액소멸을 빌었으나 지금은 이러한 풍습이 사라져 버렸다. 전국의 장승 가운데 세워진 연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유산으로 민속예술과 민속문화의 역사자료로도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