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일본군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석권하고 우리 독립군기지를 공격하자 국민부의 양세봉(梁世奉) 지휘하의 조선혁명군은 중국의용군과 연합하여 항일전투를 전개하였다.
1932년 3월 총사령 양세봉은 참모장 김학규(金學奎)와 중대장 조화선(趙化善)ㆍ최운구(崔雲龜)ㆍ정봉길(鄭鳳吉)의 3개 중대를 인솔하고 중국의용군왕동헌(王彤軒)ㆍ양석복(梁錫福) 등과 합세하여 신빈(新賓) 남방의 두령지(陡嶺地)에 도착하여 숙영하고 있었다.
이 때 신빈현성(新賓縣省)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이 이 정보를 탐지하고 총출동하여 한중연합군을 공격하였다. 1시간의 전투 끝에 연합군은 일본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추격전을 전개하였다. 추격하기를 30리, 연합군은 일본군 점령하에 있는 영릉가성을 공격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일본군을 격퇴하고 이 성을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전투에서 패전한 일본군이 흥경성(興京城)을 거점으로 복수전을 기도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은 조선혁명군은 즉시 흥경성 공격작전을 감행하여 흥경성도 탈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