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고분군.
발굴경위 및 결과
1985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영산고분군을 지표 조사하고 10여 기의 봉토분을 확인하였으며, 그 위치에 따라 ‘동리고분군’, ‘죽사리고분군’으로 구분하여 보고하였다. 이후 2003년 경남문화재연구원의 지표 조사를 통해 53기의 봉토분이 확인되었다.
2010년에는 영산고분군이 자리한 ‘창녕 영산도서관 건립 부지(동리유적)’에서 가야 시기에 축조된 11기의 고분이 발굴되었다. 이 중 6기의 나무덧널무덤과 출토된 철제 무기류와 마구류는 4~5세기 창녕 지역 고분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또한 5세기 전반에 축조된 돌덧널무덤에서는 창녕 양식 토기의 성립을 보여 주는 다양한 기종이 출토되었다.
2010~2011년에는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현,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에서 ‘영산 1호분’으로 명명된 1기의 봉토분과 돌덧널무덤 10기, 돌방무덤 1기 등 총 12기의 삼국시대 고분과 고려시대 기와가마 1기, 조선시대 축대 1기와 추정 담장지 등을 발굴 조사하였다.
영산 1호분은 봉토 직경 15m, 높이 2.9m이며, 발굴 조사를 통해 점토를 이용한 구획성 토방식, 상하 벽석의 축조 기법 차이, 순장과 유물 부장 방식 등 고분 축조 과정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6세기 후반에 축조된 돌방무덤(11호분)에서는 남아 있는 사람 뼈를 통해 65세 전후의 여성이 추가 매장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8~2019년에는 영산고분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녕군과 두류문화재연구원에서 ‘창녕 영산고분군 종합학술연구’를 진행하였다. 이와 관련한 지표 조사에서 모두 96기의 봉토분을 확인하였다.
2018년 경상남도에서는 과거 지정된 문화재 명칭 체계 변경으로 인한 혼란을 방지하고자 경상남도 기념물인 ‘영산고분군’을 ‘창녕 영산고분군’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경상남도 고시 제2018-485호).
형태와 특징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로 보면, 고분군은 4세기 후반부터 7세기까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4세기 후반에는 나무덧널무덤이 축조되었고, 5세기에는 돌덧널무덤, 6세기부터 돌방무덤이 축조되었다. 5~6세기에 축조된 고분 중에는 1기의 고분에 다수의 매장 주체부가 축조된 여러덧널식 구조의 고분도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창녕 영산고분군』(국립문화재연구소, 2014)
- 『창녕 동리유적Ⅰ-창녕 군립도서관 건립부지 내 유적-』(한겨레문화재연구원, 2014)
기타 자료
- 『경상남도 기념물 제168호 창녕 영산고분군 종합학술연구보고서』(두류문화재연구원, 2019)
- 『창녕 영산고분군 정밀지표조사 결과보고』(경남문화재연구원, 2003)
- 『가야문화권 정밀지표조사보고서』(동아대학교박물관, 198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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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능이나 묘의 둘레에 돌려 쌓은 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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