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일본인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이끄는 조사단에 의해 지표 조사가 실시되어 8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이 당시 고분군은 ‘영산읍남고분군’으로 명명하였다. 이후 고분군은 별다른 관리의 손길을 받지 못하다가 1970년대 경지 정리 과정에서 상당수의 고분이 훼손되었다.
1985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영산고분군을 지표 조사하고 10여 기의 봉토분을 확인하였으며, 그 위치에 따라 ‘동리고분군’, ‘죽사리고분군’으로 구분하여 보고하였다. 이후 2003년 경남문화재연구원의 지표 조사를 통해 53기의 봉토분이 확인되었다.
2010년에는 영산고분군이 자리한 ‘창녕 영산도서관 건립 부지(동리유적)’에서 가야 시기에 축조된 11기의 고분이 발굴되었다. 이 중 6기의 나무덧널무덤과 출토된 철제 무기류와 마구류는 4~5세기 창녕 지역 고분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또한 5세기 전반에 축조된 돌덧널무덤에서는 창녕 양식 토기의 성립을 보여 주는 다양한 기종이 출토되었다.
2010~2011년에는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현,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에서 ‘영산 1호분’으로 명명된 1기의 봉토분과 돌덧널무덤 10기, 돌방무덤 1기 등 총 12기의 삼국시대 고분과 고려시대 기와가마 1기, 조선시대 축대 1기와 추정 담장지 등을 발굴 조사하였다.
영산 1호분은 봉토 직경 15m, 높이 2.9m이며, 발굴 조사를 통해 점토를 이용한 구획성 토방식, 상하 벽석의 축조 기법 차이, 순장과 유물 부장 방식 등 고분 축조 과정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6세기 후반에 축조된 돌방무덤(11호분)에서는 남아 있는 사람 뼈를 통해 65세 전후의 여성이 추가 매장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8~2019년에는 영산고분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녕군과 두류문화재연구원에서 ‘창녕 영산고분군 종합학술연구’를 진행하였다. 이와 관련한 지표 조사에서 모두 96기의 봉토분을 확인하였다.
2018년 경상남도에서는 과거 지정된 문화재 명칭 체계 변경으로 인한 혼란을 방지하고자 경상남도 기념물인 ‘영산고분군’을 ‘창녕 영산고분군’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경상남도 고시 제2018-485호).
영산고분군은 함박산(해발 501m)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구릉지의 사면부에 군집하여 조성되어 있다. 육안으로 확인되는 봉토의 규모는 대부분 직경 20m 이하이고, 높이는 1~4m이다. 규모가 다소 큰 고분은 구릉지의 능선을 따라 조성되었고, 소형 고분은 사면부에 밀집한다. 고분은 대부분 단독으로 축조되었으나, 연접되어 있는 고분도 5기 확인되었다. 봉분의 가장자리에서 둘레돌이 확인된 고분은 17기이다.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로 보면, 고분군은 4세기 후반부터 7세기까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4세기 후반에는 나무덧널무덤이 축조되었고, 5세기에는 돌덧널무덤, 6세기부터 돌방무덤이 축조되었다. 5~6세기에 축조된 고분 중에는 1기의 고분에 다수의 매장 주체부가 축조된 여러덧널식 구조의 고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