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 고분군은 2019년 사적으로 지정된 ‘창녕 계성 고분군(昌寧桂城古墳群)’에 포함되어 있는데, 돌방무덤[石室墳]·돌덧널무덤[石槨墓]·독무덤[甕棺墓]등이 복합되어 있다.
계성면 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영산면으로 가는 국도변 좌·우 야산에 위치한 고분군으로 행정구역 상으로는 계성리와 구분되기 때문에 유적의 명칭을 구분한 것이다. 이 고분군은 계성고분군과 마찬가지로 1976년 대구-마산간 고속도로공사로 인해 한성여자대학교박물관(현 경성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는데, 일제시대 때 대부분 도굴되었으나 다행히 고분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발굴 전의 상태를 보면, 능선의 지형을 따라 봉토가 마련되어 있었고 외형상으로 비교적 규모가 큰 대형 고분과 중간 크기의 고분 사이에 소형 고분이 함께 배치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일대의 고분은 대·중·소의 각각 규모가 다른 고분들이 한 능선상에 혼재되어 있었다. 발굴조사된 고분은 총 10기이다.
사리 고분군에서 발굴조사된 무덤의 묘제(墓制)는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5기,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4기, 독무덤 1기였는데, 구덩식돌덧널무덤이 가장 많았다.
구덩식돌덧널무덤은 네 벽을 마련하고 위에서 구덩 안의 덧널 내부로 시신이 든 널[棺]을 넣고 뚜껑돌을 올려놓는 형식이었고, 앞트기식돌방무덤은 세 벽과 천장을 미리 마련한 뒤 마련된 남은 벽으로 널을 넣고 폐쇄함으로써 무덤이 완성되는 형식이었으며, 독무덤은 큰 항아리를 이용하여 만든 형식이었다.
규모는 앞트기식돌방무덤이 크고 축조상태도 뛰어났다. 앞트기식돌방무덤은 외덧널무덤[單槨墓]였으나 구덩식돌덧널무덤은 여러덧널무덤[多槨墓]와 복합묘 형식을 이루고 있었다. 출토유물도 앞트기식돌방무덤이 다양하고 장신구(裝身具)도 앞트기식돌방무덤에서만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철기·청동기 등 각종 생활용구와 순금제귀걸이 등의 장식용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창녕 사리 고분군은 묘제와 출토유물로 보아 부분적으로 지역적인 특색을 보인다. 이 고분군은 창녕지역의 다른 가야고분과 연관되며 시기적으로는 6세기경에 조영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