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예둔리 고분군 ( )

선사문화
유적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나무덧널무덤, 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이칭
이칭
의령예둔리분묘군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무덤군
건립 시기
삼국시대
관련 국가
가야
소재지
경상남도 의령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의령예둔리고분군(宜寧禮屯里古墳群)은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나무덧널무덤, 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1992년 11월부터 1993년 1월까지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으며, 가야 시기에 축조된 고분 57기, 조선시대 널무덤 4기가 조사되었다. 가야고분의 조성 시기는 4~6세기이다. 의령예둔리고분군은 남강 유역 가야 묘제와 가야토기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 준다.

정의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나무덧널무덤, 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발굴경위 및 결과

의령예둔리고분군은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에 자리하며, 4~6세기에 조성된 삼국시대 가야의 무덤군이다. 이 고분군은 낙동강 지류인 남강으로 뻗은 구릉지에 조성되어 있으며, 고분군의 서쪽과 남쪽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변에는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의령죽전리고분군함안황사리고분군이 분포한다. 아라가야의 중심지인 함안 지역과 인접하고 있어 아라가야 고분문화의 확산 과정을 잘 보여 주는 유적이다.

이 고분군에 대한 발굴 조사는 1992년 11월부터 1993년 1월까지 경상대학교박물관에서 실시하였으며, 4~6세기 축조된 나무덧널무덤 38기, 돌덧널무덤 17기, 독무덤 2기와 조선시대에 축조된 나무널무덤 4기를 조사하였다.

가야고분은 등고선과 나란한 방향으로 축조되었으나, 조선시대 묘는 등고선과 직각을 이루며 교차되는 방향으로 축조되었다. 나무덧널무덤은 2~3기가 모여 있거나 중복된 경우가 있고, 돌덧널무덤이 축조되면서 파괴되기도 하였다. 구릉의 남사면에 조성된 하위 집단의 묘역으로 파악되었다.

형태와 특징

4세기부터 5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덧널무덤은 경사가 심한 곳에 만들어졌으나, 후대에 유실이 심하여 봉토에 관한 정보는 남아 있지 않다. 고분은 길이 1.55m, 너비 0.91.5m로 작고 가늘며 길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나무덧널무덤의 축조 과정을 복원하면, 먼저 풍화 암반층을 파서 무덤구덩이를 만들고, 내부 가장자리에 나무덧널을 설치한 다음 시신이 담긴 나무널을 안치하였다. 껴묻거리는 나무널 안쪽의 시신 주변이나 나무널 외곽의 양쪽 공간에 매납하였다. 마지막으로 나무덧널 위에 나무 뚜껑을 덮고, 그 위에 약간의 봉토를 쌓아 완성하였다.

껴묻거리는 소량의 토기와 철도끼, 철낫, 손칼 등 농공구류가 대부분이며, 일부 고분에서는 쇠화살촉과 쇠투겁창 등 무기류와 유리제 구슬로 만든 목걸이가 출토되었다.

출토된 토기는 소량이지만 다리에 투창이 없는 굽다리접시, 화로모양 그릇받침, 다양한 문양으로 장식된 뚜껑, 손잡이 달린 잔, 목이 짧은 항아리 등 이른바 ‘고식도질토기(古式陶質土器)’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4세기 대 공통적인 양식을 보이는 가야토기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돌덧널무덤은 대부분 길이 36m, 너비 12m 내외로 가늘고 길며, 나무덧널무덤에 비해 규모가 약간 크다. 돌덧널무덤은 먼저 축조된 나무덧널무덤을 파괴하고 중복하여 설치되기도 하였다. 일부 고분은 양 긴 벽의 중간 부분이 넓고, 양쪽 끝이 모줄임되면서 좁아지는데, 이와 비슷한 형태의 고분이 진주가좌동고분군, 의령천곡리유적에서도 확인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돌덧널무덤은 진주, 의령을 중심으로 한 소가야 지역에서 다수 확인된다. 돌덧널무덤은 나무덧널을 대신하여 돌덧널을 설치한 것을 제외하면 나무덧널무덤의 축조 과정과 거의 동일하다. 나무 뚜껑도 돌 뚜껑으로 대체되었고, 봉토도 높게 쌓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대부분 유실되어 원상을 확인하기 어렵다.

껴묻거리는 소량의 토기와 농공구류, 쇠화살촉과 쇠투겁창 등 무기류로 나무덧널무덤의 양상과 비슷하다. 토기는 아라가야양식 토기, 소가야양식 토기, 비화가야양식 토기 등 가야 각 국의 특징이 강한 토기가 혼재하여 출토된다. 이는 의령예둔리고분군 축조 집단이 남강, 낙동강을 이용하여 가야 여러 지역과 교류하였던 사실을 알려 준다.

돌덧널무덤은 규모와 껴묻거리에서 차이를 보인다. 가장 규모가 큰 1호분에서는 쇠화살촉 10점, 손칼 5점, 쇠도끼 2점, 쇠낫 1점, 가죽끈으로 묶은 덩이쇠 10점, 칼 2점, 새모양 장식이 부착된 쇠판 등 다량의 철기가 출토되었다. 이는 1호분에 매장된 사람이 다른 고분에 비해 많은 부와 권력을 소유하였음을 알려 준다. 46호분에서는 단야구(鍛冶具)인 망치와 집게가 출토되었다.

독무덤은 큰 독을 사용하여 만들었는데, 남아 있는 1기의 큰 독은 높이 42㎝, 몸통 최대 폭 36㎝이다. 큰 독의 입구는 납작한 깬돌로 막았다. 독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은 없다.

조선시대 나무널무덤에는 1~3점의 백자와 청동수저, 청동그릇, 철제 가위, 수정제 옥과 유리제 구슬 등이 부장되어 있었고, 나무널에 사용된 널못도 출토되었다.

의의 및 평가

의령예둔리고분군은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 하류에 자리한 가야의 고분군으로 나무덧널무덤에서 돌덧널무덤으로 변하는 45세기 가야 묘제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특히 고분에서 출토된 45세기 토기는 공통적인 양식에서 지역적인 특성을 지닌 아라가야, 소가야, 비화가야의 양식 토기로 변화해 가는 가야토기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 준다.

참고문헌

단행본

『의령 예둔리분묘군』(경상대학교박물관,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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