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영산창은 조선 초기 현 전라남도 나주시의 영산강변에 설치되었던 조창이다. 조선시대에 전국의 주요 지점에 조창을 설치하고 조운을 통하여 각 지방의 세곡을 경창으로 운반하였다. 영산창은 고려시대에 운영된 해릉창의 역할을 계승하여 나주 등 남부 지역 17개 고을의 세곡을 수납하여 조운선으로 경창으로 운송하였다. 조운선 53척이 배치되었으며 세곡 조운을 감독하는 해운판관이 임명되었다. 1512년 험난한 해로에서 해난 사고가 발생하여 세곡이 손실되는 것을 방비한다는 이유로 폐쇄되었고, 그 기능은 영광 법성포창에 통합되었다.
정의
조선 초기 현 전라남도 나주시의 영산강변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
개설
내용
조선 전기 영산창은 나주, 순천, 강진, 광산, 진도, 낙안, 광양, 화순, 남평, 동복, 흥양, 무안, 능성, 영암, 보성, 장흥, 해남 등 전라도 17개 고을의 전세(田稅)를 거두어들였다가 조운선으로 경창에 운반하였다. 현재의 전라남도 중부와 남부 지역이 영산창의 수세(收稅) 구역에 해당하였다. 영산창에 배치된 조운선의 숫자는 53척이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한성과 지방의 선박을 관장하는 관청인 전함사(典艦司)에 수운판관(水運判官) 2명과 해운판관(海運判官) 1명이 소속되었다. 수운판관이 종5품의 무록관(無祿官)이었으므로, 해운판관 역시 동일할 것으로 여겨진다. 해운판관은 영산창 등 전라도 조창에서의 세곡 조운을 감독하였다.
변천과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대전회통(大典會通)』
- 『영산강 뱃길과 포구 연구』(변남주, 민속원, 2012)
- 『한국사: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24(국사편찬위원회 편, 탐구당, 1994)
- 「조선 건국기 조운체제의 정비와 그 의미」(한정훈, 『진단학보』 120, 진단학회, 2014)
- 「고려~조선전기 조창(漕倉)의 분포와 입지」(정요근, 『한국사학보』 57, 고려사학회, 2014)
- 「高麗末期の漕運運營」(六反田豊, 『久留米大學文學部紀要』 , 國際文化學科編 2,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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