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마산창은 고려 석두창의 후신으로 1403년에 폐지되었다가 1760년 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에 다시 설치되었던 조선시대의 조창이다. 경상도 남부 지역에 설치된 가산창, 삼랑창과 함께 삼조창으로 불렸다. 이 지역의 세금은 지토선과 민간선반으로만 이동하였는데, 운송기간이 길어져 곡식이 손상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창원과 그 주변 함안·칠원·진해·거제 등 8개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한성의 경창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맡았다. 조세의 금납화로 인해 19세기 말 조운제도가 사실상 폐지되자 마산창 역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정의
고려 석두창(石頭倉)의 후신으로 1403년에 폐지되었다가 1760년 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에 다시 설치되었던 조선시대의 조창(漕倉).
개설
내용
마산창은 1760년에 처음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미 조선 초기에 창원 지역에는 같은 이름의 조창이 존재하다가 1403년(태종 3)에 폐쇄되고, 경상도 지역의 세곡은 충주와 한강을 거쳐 경창으로 운반되었다. 조선 초기의 마산창은 고려시대 13조창 중 하나인 합포(合浦) 석두창의 후신이다. 조선 초기의 마산창은 석두창에서 단순히 이름만 고친 것인지, 조창의 위치 이동이 동반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한편 조선 후기의 마산창은 가산창과 함께 설치되었다. 경상도의 좌조창과 우조창은 1760년 경상도관찰사 조엄(趙曮)의 장계(狀啓)에 따라 신설되었다. 즉 경상도 남부 각 고을의 세곡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선박인 지토선과 경강의 민간 선박을 이용하여 운송하여 납부하였으므로, 운송 기간이 길어지는 폐단이 생겼다. 따라서 세곡이 제때에 경창에 도달하지 못하여 상해서 쓸모없게 되는 경우가 잦았다. 또한 17세기에는 경상도 남부 지역의 세곡 운송을 위하여, 진주 장암창(場巖倉)에서 창원, 진주 등 9개 고을의 전세를, 양산 감동창(甘同倉)에서 양산 등 7개 고을의 전세를 경창으로 운송하도록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장암창과 감동창은 정식의 조창은 아니었다. 이에 조선 정부는 1760년에 마산창과 가산창을 설치하였고, 1765년에는 추가로 삼랑창을 설치하였다.
마산창에는 조운선 20척이 편성되어 있었으며, 각 선박에는 사공(沙工)이 1명, 격군(格軍)이 15명, 조보(漕保)가 32명씩 배정되었다. 마산창은 창원, 함안, 칠원, 진해, 거제, 웅천, 의령 동북면, 고성 동남면 등 8개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한성의 경창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맡았다. 마산창의 세곡은 창원부사(昌原府使)가 감봉(監捧)하고 구산첨사(龜山僉使)가 영납(領納)하였는데, 감봉하는 사람을 도차원(都差員)이라 하고, 영납하는 사람을 영운차사원(領運差使員)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의 마산창은 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지만, 1403년까지 존재했던 옛 마산창의 위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남성동에 있었다는 설, 마산합포구 석전동 설, 마산합포구 산호동 설 등이 있다.
변천과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 『대전회통(大典會通)』
- 『만기요람(萬機要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고려시대 조운제도 연구』(문경호, 혜안, 2014)
- 『한국사: 조선 후기의 경제』 33(국사편찬위원회 편, 탐구당, 1997)
- 『조선후기 선운업사(船運業史) 연구』(최완기, 일조각, 1989)
- 「17~18세기 경상도 세곡운송체계의 변화와 삼조창(三漕倉)의 설치」 (문광균, 『대동문화연구』 86,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2014)
- 「조선후기 양산 甘同倉의 설치와 변천」(문광균, 『한국문화』 66,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014)
- 「고려시대 조운제와 마산 석두창(石頭倉)」(한정훈, 『한국중세사연구』 17, 한국중세사학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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