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근천(犯斤川)은 조선 전기 충청도의 ‘수조처(收租處)’ 8곳 중 한 곳이다. 수조처란 조창의 기능을 수행하였던 포구을 지칭하는 표현인데, 15세기에 범근천에서는 홍주와 서산, 보령, 서천 등 20개 고을의 세곡(稅穀)을 수납하여 경창(京倉)으로 납부하였다. 범근천의 수세(收稅) 구역은 현 충남 서부 지역에 해당한다. 그러나 충분한 수심 확보가 어려웠던 포구의 문제로 인하여, 범근천의 조창 시설은 1478년(성종 9)에 폐쇄되고 아산 공세곶창(貢稅串倉)이 그 기능을 대신하였다.
15세기 전반의 상황을 보여주는 지리서인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충청도에는 조창이 위치한 수조처가 8곳이 기록되어 있는데, 범근천은 그 중 1곳에 해당한다. 삽교천과 안성천이 흘러나가는 아산만 지역에는 범근천 외에도 경양포(慶陽浦)와 공세곶 2곳도 수조처에 포함되어 있다. 범근천은 면천 관아 동쪽 30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충청도의 면천, 임천, 한산, 서천, 남포, 비인, 홍산, 홍주, 태안, 서산, 해미, 당진, 덕산, 예산, 청양, 보령, 결성, 대흥, 석성, 부여 등 20개 고을의 전세(田稅)를 수납하여 경창으로 운송하였다. 범근천의 위치는 삽교천 하구 연변에 위치한 현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창리·강문리 일원으로 비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범근천이 범근내포(犯斤乃浦)라는 지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범근내포는 면천 관아 동쪽 27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현 당진시 우강면 창리의 창말에는 창리토성의 유적이 있다고 하는데, 범근천의 조창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경국대전』에는 조선시대 전국에 설치, 운영되는 조창으로 9개 조창이 기록되었다. 9개의 조창 중에 범근천(범근내포)은 포함되지 않았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공주와 홍주 관할 고을들의 세미(稅米)를 범근내포의 창고에서 수납하여 조운을 통하여 경창으로 운반하였는데, 1478년 물이 얕아져서 배가 바닥에 부딪히므로 조창을 아산 공세곶으로 옮겼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범근천의 조창 기능은 소멸하였지만, 범근천이라는 지명은 후대까지도 계승되었다. 조선 후기 이 지역은 면천군 범천면으로 편제되었는데, 범천(泛川)은 범근천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조선 전기 범근천의 조창은 현재의 충청남도 서부 지역을 수세 구역으로 갖고 있었다. 고려시대의 경우, 이 방면의 조세는 가로림만 안쪽에 있던 영풍창(永豊倉)에서 수납하여 경창으로 운송하였다. 그러나 범근천의 포구는 충분한 수심을 확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어, 많은 세곡을 실어나르는 조창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에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1478년 범근천의 조창 기능은 아산 공세곶창에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