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창(慶源倉)은 충주에 기존부터 있던 덕흥창(德興倉)의 기능을 분산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경원창에 모인 경상도의 세곡은 한강을 따라 경창으로 운반되었다. 1465년(세조 11) 하류 지역에 가흥창(可興倉)이 설치되자 경원창은 덕흥창과 함께 폐지되었다.
『경상도』 지리지에 의하면, 경상도의 조세는 과거 김해 불암창(佛巖倉)과 창원 마산창(馬山倉), 사천 통양창(通洋倉) 등을 거쳐 경창으로 운반되었다. 그러나 1404년(태종 4)에 불암창 등 세 조창을 폐지하고 충주의 경원창에 경상도의 세곡을 모아 경창으로 납부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한편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충주 읍치 서쪽 10리의 연천(淵川)에 경상도의 공부(貢負)를 거두어 받는 조창인 경원창이 있고 그 북쪽에 덕흥창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덕흥창 또는 경원창이 충주의 금천(金遷) 서쪽 언덕에 있었는데, 조선 세조 때에 가흥역 동쪽 2리 지점에 신설된 가흥창이 그 기능을 대신하고 경원창은 폐지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상의 내용으로 살펴볼 때, 경원창은 경상도 지역의 세곡을 별도로 보관하고 운반하기 위하여 1403년(태종 3)에 기존의 덕흥창 옆에 설치되었던 조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려 13조창 중 하나인 덕흥창은 충주와 그 주변, 그리고 경상도의 경주, 상주, 안동, 경산부(현 경북 성주) 관할 지역의 세곡이 모이는 조창이었는데, 그 중 경상도 지역의 세곡을 분리하여 별도로 보관하기 위하여 경원창을 설치한 것이다. 덕흥창과 마찬가지로 경원창은 현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에 있었다. 조선 초기 경원창과 덕흥창 두 조창은 가까이 위치하였기 때문에 하나의 조창으로도 인식되었으며, 두 조창을 합쳐서 금천, 금천창(金遷倉), 연천(淵遷) 등으로도 불렀다.
1465년(세조 11) 경원창은 덕흥창과 함께 폐지되고, 하류 지역에 설치된 가흥창이 그 기능을 대신하였다. 신설된 가흥창은 현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가흥리에 위치하였다.
경원창은 기존의 덕흥창의 수세(收稅) 구역이 너무 넓었던 까닭에, 덕흥창의 기능을 분담시키기 위하여 조선 초기에 설치된 조창이었다. 경원창은 덕흥창 바로 옆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덕흥창과 경원창은 하나의 조창으로 인식되기도 하였으나, 그 존속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