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삼랑창은 1765년 현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에 설치되었던 조창이다. 창원 마산창, 진주 가산창과 함께 조선 후기 경상도 남부 지역에 설치된 3조창 중 하나이다. 후조창이라고도 불렀다. 경상도 밀양, 김해 등과 그 주변 지역의 세곡을 모아 경창으로 운반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조운선 15척이 편성되었고 각 선박에는 사공 1명, 격군 15명, 조보 32명씩 배정되었다. 수송하는 세곡이 대부분 대동미에 속하였기 때문에 선혜청에서 관리하였다. 19세기 말이 되어 그 기능을 상실하였고 현재 삼랑창이 있던 자리에는 민가가 들어서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정의
1765년 현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
개설
내용
삼랑창은 낙동강 하류 구간에 위치하였다. 그런데 일찍이 조선 초기에도 낙동강 하구 김해 지역에는 불암창(佛巖倉)이라는 조창이 있었다. 김해 불암창은 고려 13조창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언제부터 운영되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불암창은 창원 마산창, 사천 통양창(通洋倉) 등과 함께 1403년(태종 3)에 폐쇄되고 경상도 남부 지역의 세곡은 충주 경원창(慶源倉)을 거쳐 한강을 통해 경창으로 운반하게 되었다. 따라서 1765년 삼랑창의 설치는 약 360여 년만에 낙동강 하류 지역에 조창이 재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삼랑창에는 조운선 15척이 편성되어 있었으며, 각 선박에는 사공(沙工)이 1명, 격군(格軍)이 15명, 조보(漕保)가 32명씩 배정되었다. 삼랑창은 밀양, 현풍, 창녕, 영산, 김해, 양산 등 6개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한성의 경창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맡았다. 삼랑창의 세곡은 밀양부사(密陽府使)가 감봉하고 제포만호(薺浦萬戶)가 영납(領納)하였는데, 감봉하는 사람을 도차원(都差員)이라 하고, 영납하는 사람을 영운차사원(領運差使員)이라 하였다. 삼랑창은 현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에 있었으나, 현재는 민가가 들어서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변천과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 『대전회통(大典會通)』
- 『만기요람(萬機要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고려시대 조운제도 연구』(문경호, 혜안, 2014)
- 『한국사: 조선 후기의 경제』 33(국사편찬위원회 편, 탐구당, 1997)
- 『조선후기 선운업사(船運業史) 연구』(최완기, 일조각, 1989)
- 「17~18세기 경상도 세곡운송체계의 변화와 삼조창(三漕倉)의 설치」(문광균, 『대동문화연구』 86,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2014)
- 「조선후기 양산 감동창(甘同倉)의 설치와 변천」(문광균, 『한국문화』 66,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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