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감동창은 조선 후기 경상도 양산군에 설치되어 있었던 세곡 보관 창고이다. 낙동강 3대 나루터인 감동 나루터(현 부산광역시 구포동)에 군사, 세곡 목적으로 있었다. 1610년 최현이 건의하여 수군의 군량 조달을 위한 ‘군창’으로 설치되었다. 양산군수의 관리를 받았으며 구성원은 감관, 색리와, 수직군, 순군이 있었다. 전후 8칸씩 총 16칸이었으나 1749년 전소된 이후 총 10칸으로 재건하였다. 18세기 중엽의 삼조창 설치와 19세기 전반 금정산성의 축조로 그 기능이 쇠퇴하였다. 19세기 후반에 사창제가 실시되면서 남사창으로 바뀌었고 20세기 초반에 폐지되었다.
정의
조선 후기 경상도 양산군에 설치되어 있었던 세곡 보관 창고.
개설
명칭 유래
자연환경
형성 및 변천
그러나 영조대 밀양, 진주, 창원에 삼조창(三漕倉)이 설치되면서 감동창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다. 삼조창의 설치로 감동창의 속읍이 창원 마산창(馬山倉)과 밀양 삼랑창(三浪倉)으로 이속되었기 때문이었다. 삼조창의 설치로 감동창은 조창 기능을 상실하였다. 동시에 군현에서 보내오던 사포량을 양산의 대동저치미로 대납하면서 ‘군창’으로써의 기능도 사라졌다. 1808년(순조 8)에는 금정산성(金井山城)이 수축되면서 감동창은 더욱 쇠퇴하였다. 이후 감동창은 명맥을 이어오다가 1867년(고종 4) 사창제(社倉制)가 시행되자 남사창(南社倉)으로 개칭되었고, 1907년(융희 1) 이전 폐지되었다.
현황
참고문헌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주본존안(奏本存案)』
- 『만기요람(萬機要覽)』
- 『양산군지(梁山郡誌)』
- 『강좌집(江左集)』
- 『눌재집(訒齋集)』
- 『우리 고장의 역사와 문화』(백이성, 북산북구 낙동문화원, 2001)
- 「조선후기 양산 감동창의 설치와 변천」(문광균, 『한국문화』6, 2014)
- 「삼남 세곡의 운송과 강화 연미정의 풍경」(김덕진, 『인천학연구』7, 2007)
- 「18·19세기 경상도 남부지역의 유통구조」(변광석, 『지역과 역사』5,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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