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강계 인삼은 조선시대 평안도 강계 지역에서 채취하여 공물로 납부하던 인삼이다. 조선시대 강계부는 인삼의 최대 생산지였다. 산림이 울창하고 고도가 높아 인삼이 자생하기 좋은 자연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강계 인삼은 일찍부터 공납제에 포함되어 조정에 납부되었다. 그런데 17세기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쌀·무명으로 대신 납부되었고 1829년에는 동전으로 상납되기 시작하였다. 강계 인삼은 내의원을 비롯한 의정부, 종친부, 충훈부 등의 중앙기관과 평안 감영·병영 등 상급기관의 약재로 사용되었다. 또한 중국과 일본 등 외국과의 무역품으로도 이용되었다.
정의
조선시대 평안도 강계지역에서 채취하여 공물로 납부하던 인삼.
개설
연원 및 변천
그러나 강계부에 분정(分定)된 공삼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정은 효율적인 인삼정책과 원활한 공삼제를 위해 세삼에 대해서는 부담액수를 줄여주고, 예무삼에 대해서는 값을 추가로 지불하는 등의 시책을 실시하였다. 강계부의 공삼은 18세기 후반 가삼(家蔘)의 유통과 맞물리면서 작공(作貢)과 대전납(代錢納)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예무삼은 1791년(정조 15)을 기점으로 세 차례에 걸쳐 전액 공물로 편입되었고, 세삼은 1813년(순조 13)부터 사대동(私大同, 공물을 각 군현 자율적으로 미포 형태로 납부하는 방식)의 형태를 거쳐 1829년(순조 29)에 동전으로 상납되기 시작하였다.
구조 및 형태
제조 방법
사용 방법 및 특징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강계부읍지(江界府邑誌)』
- 『강주문적(江州文蹟)』
- 『강주장계(江州狀啓)』
- 『강주절목총록(江州節目總錄)』
- 「18세기 강계지역 공삼제의 운영과 변화」(문광균, 『조선시대사학보』57, 2011)
- 「조선후기 인삼무역의 전개과정: 18세기초 삼상의 성장과 그 영향을 중심으로」(車守正, 『북악사론』1,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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