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계 인삼 ( )

조선시대사
물품
조선시대 평안도 강계지역에서 채취하여 공물로 납부하던 인삼.
이칭
이칭
강삼(江蔘), 강계삼(江界蔘)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평안도 강계지역에서 채취하여 공물로 납부하던 인삼.
개설

조선시대 강계부는 인삼의 최대 생산지였다. 이곳은 산림이 울창하고, 고도가 높아 인삼이 자생하기 좋은 자연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조정은 일찍부터 강계부의 인삼을 공납제에 포함시키고, ‘공삼(貢蔘)’이란 명목으로 수취하였다.

연원 및 변천

17세기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강계부의 인삼은 쌀이나 무명으로 대납되었다. 대동법으로 공삼은 삼공인(蔘貢人)이 조달하였으나 삼상(蔘商)에 의한 인삼의 대외 유출이 활발해짐으로 인하여 국내에서는 인삼가격이 상승하자, 삼공인들은 조정으로부터 받은 공가(貢價)로 인삼을 사서 납부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국내에서 생산되던 인삼도 계속 줄어들었으므로 공삼의 수급체계는 문제에 봉착하였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조정은 1707년(숙종 33) 강계부에 세삼(稅蔘) 30근, 1754년(영조 30)에는 예무삼(例貿蔘) 35근을 분정하고, 인삼을 수취하였다. 여기에 수시로 통신사의 행차에 소요되는 신삼(信蔘)도 수취하였다.

그러나 강계부에 분정(分定)된 공삼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정은 효율적인 인삼정책과 원활한 공삼제를 위해 세삼에 대해서는 부담액수를 줄여주고, 예무삼에 대해서는 값을 추가로 지불하는 등의 시책을 실시하였다. 강계부의 공삼은 18세기 후반 가삼(家蔘)의 유통과 맞물리면서 작공(作貢)과 대전납(代錢納)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예무삼은 1791년(정조 15)을 기점으로 세 차례에 걸쳐 전액 공물로 편입되었고, 세삼은 1813년(순조 13)부터 사대동(私大同, 공물을 각군현 자율적으로 미포 형태로 납부하는 방식)의 형태를 거쳐 1829년(순조 29)에 동전으로 상납되기 시작하였다.

구조 및 형태

세삼과 예무삼 등 강계 공삼은 호조에서 주관하였다. 강계에서 호조에 상납되는 공삼은 세목에 따라 분배되었는데, 세삼은 중앙기관, 예무삼은 동래부를 통해 일본에서 도항해오는 연례팔송사(年例八送使), 신삼은 통신사로 각각 지급되었다. 즉, 인삼의 수취와 배분이 모두 호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삼상에 대해서는 호조뿐 아니라 평안 감영, 강계부, 동래부 등 지방아문에서도 철저히 단속하고 있었다. 이는 인삼의 국외반출을 막고자 한 의도였다.

제조 방법

강계 인삼은 강계부에 거주하는 파수군이 산에 들어가 직접 채취한다. 입산할 때는 조직을 편제하고, 영장(營將)과 통수(統首)가 지휘한다. 영장과 통수는 각자 저울을 가지고 가서 통솔하던 파수군으로부터 생삼(生蔘)을 수취하였다. 공삼은 대체로 건삼(乾蔘)으로 납부되었으므로 영장과 통수는 건모율(乾耗率)을 염두하고 부과된 수량보다 더 수취하였다. 그리고 생삼이 다 말라 건삼이 되면 관에 납부하였다. 인삼 중량의 단위는 10리(釐)=1푼(分), 10푼(分)=1전(錢), 10전(錢)=1냥(兩), 16냥(兩)=1근(斤)이다.

사용 방법 및 특징

공삼제로 확보한 강계 인삼은 내의원을 비롯한 의정부, 종친부, 충훈부 등의 중앙기관과 평안 감영과 평안 병영 등 상급기관의 약재로 사용되었고, 한편으로는 중국과 일본 등 외국과의 무역품으로도 이용되었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영장과 통수는 입방하기 전 별도로 파수에 필요한 식량과 제반 물품을 마련하여야 했다. 이들은 인삼을 채취하기 전 산신제(山神祭)를 지냈기 때문에 이에 필요한 제물(祭物)과 휘하 군졸의 반전(盤纏, 노자)을 무고(貿庫)에서 빌려 마련하고, 그 비용은 하산할 때 군졸에게 ‘산제물력가(山祭物力價)’라는 명목으로 징수하여 다시 창고에 납부하였다. 이때 파수군 1명이 영장과 통수에게 납부한 비용은 인삼 1전(錢)쯤이나 혹 5~6분(分)이었다. 즉, 산제물력가는 파수군이 채삼을 하는데 소요되는 일종의 잡비였던 셈이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
『강계부읍지(江界府邑誌)』
『강주문적(江州文蹟)』
『강주장계(江州狀啓)』
『강주절목총록(江州節目總錄)』
「18세기 강계지역 공삼제의 운영과 변화」(문광균, 『조선시대사학보』57, 2011)
「조선후기 인삼무역의 전개과정: 18세기초 삼상의 성장과 그 영향을 중심으로」(車守正, 『북악사론』1, 1989)
집필자
송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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