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경상도 남부의 낙동강 하구에 설치되었다가 1403년(태종 3)에 폐지된 조창.
개설
내용
김해 불암창이 언제부터 운영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불암창은 고려시대의 13조창에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고려 초기부터 존재하지는 않았고 고려 중기나 고려 후기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고려 말기에 왜적의 침략으로 인해 경상도와 전라도 남해안 일대가 극심한 피해를 입었고, 해로를 통한 조운의 수송 자체가 매우 힘들었음을 고려하면, 고려 말기에는 불암창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혹은 왜적의 침략이 어느 정도 진정되는 조선 개창 전후 시기에 신설된 조창일 가능성도 있는데, 그 경우에는 불암창의 존속 시기가 1403년까지 불과 10~20년 내외에 지나지 않는다.
불암창의 위치는 현재의 경상남도 김해시 불암동 일대로 비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김해 관아 동쪽 18리 지점에 둘레 265척의 석축으로 된 조전성(漕轉城)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불암창과 관련된 성곽으로 판단되지만, 현재 그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 외에도 불암창과 관련된 유적으로 특별히 알려진 것은 없다. 불암동은 서낙동강 하구의 서쪽 강변에 위치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는 김해와 동래를 왕래할 때 불암진(佛巖津)과 양산 용당포(龍堂浦) 사이로 낙동강을 건넌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즉 불암창이 있던 불암진은 조창이 있었던 곳이지만, 낙동강 하류를 횡단하는 나루로서도 중요한 입지를 지닌 곳이었다. 지금도 불암동에는 남해고속도로, 김해와 부산 구포를 연결하는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변천과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만기요람(萬機要覽)』
- 『고려시대 조운제도 연구』(문경호, 혜안, 2014)
- 『고려시대 교통운수사 연구』(한정훈, 혜안, 2013)
- 「조선 건국기 조운체제의 정비와 그 의미」(한정훈, 『진단학보』 120, 진단학회, 2014)
- 「여말 선초 조운제도의 연속과 변화」(문경호, 『지방사와 지방문화』 17-1, 역사문화학회, 2014)
- 「고려~조선전기 조창(漕倉)의 분포와 입지」(정요근, 『한국사학보』 57, 고려사학회, 2014)
- 「17~18세기 경상도 세곡운송체계의 변화와 3조창(三漕倉)의 설치」 (문광균, 『대동문화연구』 86,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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