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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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서울 영휘원과 숭인원 중 영휘원
서울 영휘원과 숭인원 중 영휘원
조선시대사
유적
문화재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6대 고종의 후비인 순헌귀비 엄씨의 원.
이칭
이칭
홍릉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서울 영휘원과 숭인원(서울 永徽園과 崇仁園)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91년 10월 25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홍릉로 90 (청량리동, 영휘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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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6대 고종의 후비인 순헌귀비 엄씨의 원.
내용

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5만 5015㎡. 한 묘역 안에 영휘원과 숭인원이 있다. 이곳에는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의 능인 홍릉(洪陵)이 있었다. 1919년 고종이 죽었을 때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금곡리(현 남양주시 금곡동)로 천장(遷葬: 묘를 옮김.)되었다. 이런 연유로 이곳은 ‘홍릉’이라 불리고 있다.

영휘원은 조선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사친(私親)인 순헌귀비 엄씨의 원소(園所: 왕가 산소의 다른 이름)이다. 순헌귀비는 증찬성 진삼(鎭三)의 딸로 1854년(철종 5)에 태어나 1859년에 입궁해 민비가 을미사변으로 시해당하자 아관파천(俄館播遷) 때 고종을 시봉(侍奉)하였으며, 1897년 영왕을 낳고 1903년 귀비로 책봉되었다.

엄귀비는 양정의숙 · 진명여학교 · 명신여학교의 설립에 참여하는 등 근대 여성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1911년 7월에 죽었다. 같은 해 8월에 안장하고 원호(園號)를 영휘라고 하였으며, 위패는 덕수궁 영복당(永福堂)에 봉안되었다가 경복궁 서북 측에 있는 칠궁(七宮)으로 이안(移安)되었다.

숭인원은 영친왕과 이방자(李方子) 사이에서 태어난 진(晋)의 원소이다. 진은 1921년 8월에 태어나 그 이듬해 5월에 죽었다.

두 원의 묘역시설로는 곡장(曲牆: 무덤 뒤에 둘러싼 작은 담) · 상설(象設, 石虎 · 石馬) · 혼유석(魂遊石) · 장명등(長明燈) · 망주석(望柱石) · 문인석(文人石) · 무인석(武人石) · 석마(石馬) · 홍살문(紅箭門) · 정자각(丁字閣) · 비각(碑閣) · 제실(祭室) · 우물[靈泉] · 사초지(莎草地: 오래 되거나 허물어진 곳을 떼로 잘 입혀 다듬은 곳) 등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

담장 밖 북쪽에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관(世宗大王紀念事業會館)이 있으며, 구영릉(舊英陵, 서울 서초구 內谷洞 獻仁陵)에서 수습해온 신도비(神道碑)와 능호석(陵護石) 등이 전시되어 있다.

참고문헌

『선원보감(璿源寶鑑)』
『기내능원지』(경기도,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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