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정공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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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의병장 정사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9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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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의 의병장 정사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9년에 간행한 시문집.

개설

4권 1책. 활자본. 1899년 후손 종구(鍾球)가 편집하고 중간한 것이다. 『옥봉정공유집』의 권두에 안수록(安壽祿)의 서문과 김문옥(金文鈺) · 이충호(李忠鎬)의 중간서문이 있다. 권말에 송병선(宋秉璿) · 정시림(鄭時林)의 구발과 정창기(鄭昶基)의 중간발이 있다.

서지적 사항

권1은 시 282수, 권2는 소(疏) 2편, 회계(回啓) 1편, 격문 4편, 묘의문(墓義文) 1편, 부록으로 장(狀) 1편, 서(書) 1편, 녹(錄) 2편, 유묵(遺墨) 37점, 연보, 권3은 장(狀) 1편, 서(書) 9편, 통문 7편, 축(祝) · 단자(單子) · 홀기 각 1편, 권4는 통문 5편, 행장 · 묘갈명 · 묘표 · 유사 · 신도비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옥봉정공유집』의 소 중에 「진창의토적사(陳倡義討賊事)」는 『산서잡록(山西雜錄)』 임진일기에 실려 있는 것이다. 임진년(1592) 10월 10일 의병장 임계영(任啓英)을 대신해서 찬술한 글이다. 남원부사 윤안성(尹安性)의 관군과 임계영의 의병들이 연대하여 남원 · 무주 · 장수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이룬 전공과 접전현황, 의병장 김성일(金誠一)과의 관계, 호남지방 방어의 필요성 등이 기술되어 있다.

『옥봉정공유집』의 「청유군공자논상소(請有軍功者論賞疏)」는 당시 군량과 무기조달에 공이 많았던 자들과, 개령 · 성주 두 고을을 수복하는 데에 공이 컸던 부장 장윤(張潤) · 최억남(崔億男)의 행상(行賞)을 청한 내용이다.

「이장흥사자격(移長興士子檄)」 · 「재낙안이본군격(在樂安移本郡檄)」 · 「도순천이본부격(到順天移本府檄)」 · 「향남원이도내열읍격문(向南原移道內列邑檄文)」 등은 군량과 의병을 모으기 위하여 호남 전역에 띄운 격문이다. 『옥봉정공유집』의 「영광군향중다사모의곡회의문(靈光郡鄕中多士募義穀會議文)」은 그의 격문에 호응한 영광 유림들이 군량미를 모으기로 결의한 것이다.

22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어 임진왜란 때에 호남지방 의병항쟁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에 좋은 자료가 된다. 이밖에 권3의 서 · 장 · 통문 등은 후세 유림들이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청원한 내용들이다. 전주대학교 도서관도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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