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승려 오암 의민의 시문집으로서 1책이다. 총 281수의 시와 문 10여 편이 수록되어 있다.
1792년에 쓴 지연거사(止淵居士)의 발문에 의하면, 오암이 사망한 후 제자인 우홍(宇洪)이 발행하였다고 한다. 경상도 청하 보경사(寶鏡寺)에서 간행되었다.
1책. 목판본. 『한국불교전서』 제9책에 수록되어 있다.
오암 의민은 속성이 김(金)씨이며, 어려서 유서(儒書)를 공부하였다. 22세에 보경사로 출가하여 각신(覺信)의 제자가 되었으며, 25세에 수행(守行)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오암집(鰲巖集)』은 시 281수와 서(書)·기(記)·소(疏)·상량문(上樑文) 등의 문 10여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에는 오언절구 51수, 오언율시 71수, 칠언절구 80수, 칠언율시 78수, 영찬(影讚) 1수가 있다.
권두에 조선후기 흥해(興海)군수를 역임한 문신 성대중(成大中, 1732∼1812)이 쓴 서문이 있고, 부록으로서 제자인 회관(誨寬)이 정리한 행장이 붙어 있다. 성대중은 영·정조대의 문신이자 학자로서 자가 사집(士執)이고 호가 청성(靑城)이다. 오암은 성대중과 깊이 교유했던 듯한데, 본서에도 「사상성흥해대중운(謝上成興海大中韻)」이라는 시와 편지글인 「상성흥해서(上成興海書)」가 실려 있다.
내용은 불도(佛道)에 관한 것이거나 아니면 불도에 따른 삶의 참된 도리에 관한 깨우침을 노래한 시가 많다. 예를 들어 「심성(心性)」·「진성(眞性)」·「선지(禪志)」 등이 그것이다. 시 가운데에는 대단히 뛰어난 것이 많은데, 성대중도 서문에서 당시 오암이 최천익(崔天益, 1710∼1779)과 쌍벽을 이루었다고 말하고 있다.
최천익은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閭巷詩人)으로서 유명한 사람이다. 오암은 일찍부터 최천익과 친분이 있었던 듯하여 편지글인 「사최상사천익서(謝崔上舍天翼書)」와 「답최상사서(答崔上舍書)」를 남기고 있다. 한편 서 10편은 지방 관직에 있는 선비와 주고받은 글이며, 기(記)로는 「옥련암중창기(玉蓮菴重剏記)」가 있고, 문(文)으로는 「주종문(鑄鍾文)」·「천왕문중창상량문(天王門重剏上樑文)」 등이 있다.
오암 의민은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 최천익과 함께 일컬어질 정도로 수준 높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내용은 불교의 가르침을 찬양하거나 불도에 관한 것이 많으며, 영물시(詠物詩), 심회를 읊은 시, 사대부들과 교유한 시들도 많다. 반면에 문(文)의 양은 많지 않고 특별한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