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해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돈녕부도정, 여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만운(晩雲)
  • 여화(汝和)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해주(海州)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수찬(修撰)|예조정랑|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여주목사
  • 출생 연도1562년(명종 1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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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돈녕부도정, 여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화(汝和), 호는 만운(晩雲). 사섬시주부(司贍寺主簿) 오옥정(吳玉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감찰 오경민(吳景閔)이고, 아버지는 오희문(希文)이다.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로, 군수 이정수(李廷秀)의 딸이다. 큰아버지 오희인(吳希仁)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문사에 뛰어나 시와 표(表)에 능하였다. 선조 말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1610년(광해군 2) 세자익위사부수(世子翊衛司副率)가 되고, 그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었다.

이어 수찬(修撰)·교리(校理)·응교(應敎)·예조정랑 등을 역임하고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뒤 여주목사로 나갔다. 성품이 관대하여 남의 잘못을 탓하지 아니하나, 공무집행에 있어서는 엄격한 규율을 지키고 공사의 구분을 분명히 하였다.

백성을 사랑하여 농업을 권장하고 학문을 진작하며 필요없는 부역과 지나친 세금을 경감하여 주민의 노역을 덜어주는 등 애민정치에 힘썼다.

흉년에 창고를 열어 기민을 진제(賑濟: 곤궁한 백성을 도와 구제함)하여 많은 치적을 남겼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강화가 성립되자, 이것을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버리고 산중에 은거하였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만운집(晩雲集)』

  • - 『추탄집(楸灘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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