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강화유수, 대사헌,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75년 문신들이 행하는 전강(殿講)에서 수석을 차지해 홍국영(洪國榮)과 함께 숙마(熟馬) 한 필을 하사받았으며, 그 해 승지에 올랐다. 1777년(정조 1) 찬집당상(纂輯堂上)이 되고 이어서 대사간에 올라 홍봉한(洪鳳漢)의 역변 사건의 처리에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1801년(순조 1) 행부호군(行副護軍)이 되고 천주학 배척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아경(亞卿)의 지위에 올랐다. 그 해 진하부사(進賀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정조실록』 편찬의 찬수당상에 임명되었으며, 1803년 다시 대사간이 되고 이듬해 강화유수가 되어 외지로 나갔다.
임기가 끝나자 1806년 중앙으로 돌아와 대사헌이 되고, 이어서 한성부판윤을 역임하였다. 1807년 예조판서, 이듬해 판의금부사, 1809년 우참찬을 지낸 뒤 이듬해 판돈녕부사에 이르렀다.
성격이 온후해 모나지 않았고 남의 의사를 존중해 자기 뜻을 고집하지 않아 여러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공사 처결은 대쪽같이 곧아서 사사로운 정을 개입시키지 아니하였다. 시호는 정헌(定獻)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청선고(淸選考)』
- 『노주집(老洲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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