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고창 출신. 자는 길지(吉之), 호는 도암(鞱庵). 아버지는 오언기(吳彦麒)이다. 기효간(奇孝諫)·정여립(鄭汝立)의 문인이다.
스승 정여립이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을 비방하는 말을 듣고, 잘못된 점을 적어 정여립에게 주어 노여움을 샀다. 정여립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으나, 편지를 정여립이 보관하고 있다가 나타남에 따라 석방되어 천거되었다.
후릉참봉(厚陵參奉)을 거쳐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주의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으로서 태조의 어진(御眞)을 비롯한 제기(祭器)와 역대 실록을 내장산에 숨겨 보전하였다.
1618년(광해군 10)에 위성공신(衛聖功臣)에 녹훈되었다. 그 뒤 전쟁의 참화를 수습할 쇄신책과 인심수습을 상소하였다.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과 태인현감을 지내고 68세에 죽었다. 고창의 월계정사(月溪精舍)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도동연원록(道東淵源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