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사 반종 ( )

고성 옥천사 대종
고성 옥천사 대종
공예
유물
국가유산
1776년(영조 52)에 주종장 이만중(李萬重)과 백예적(白詣適)이 함께 제작한 동종.
이칭
이칭
옥천사명 범종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고성 옥천사 동종(固城 玉泉寺 銅鐘)
분류
유물/불교공예/의식법구/의식법구
지정기관
경상남도
종목
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72년 02월 12일 지정)
소재지
경상남도 고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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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776년(영조 52)에 주종장 이만중(李萬重)과 백예적(白詣適)이 함께 제작한 동종.
개설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연화산에 위치한 옥천사의 성보박물관 보장각에 전시되어 있는 동종이다. 옥천사반종은 종신에 “건륭 41년 병신 8월 일 경상우도 진주 남면 연화산 옥천사 대종 개주기 … 구종본중육백근 신주첨금일백근 도편수 이만중 백예적(乾隆四十一年 丙申八月日 慶尙右道 晋州 南面 蓮華山 玉泉寺 大鍾改鑄記 … 旧鍾本重六百斤 新鑄添金一百斤 都片手 李萬重 白詣適)”이라는 주종기(鑄鍾記)가 남아 있어, 1776년 8월 경상도 진주 남면(현재 경상남도 고성군) 연화산에 위치한 옥천사에서 사용하기 위해 사찰에 유전하던 옛 종 600근에 철물 100근을 더하여 주종장 이만중과 백예적이 함께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연곽 아래의 넓은 빈 공간에 “대정 5년 10월 일 중수기 … 편수 임화순(大正五年十月日重修記 … 片手 林化㥧)”이라는 명문이 추가로 기재되어 있어 1916년에 수리 작업이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내용

옥천사반종은 전체 높이가 119.1㎝이고, 입지름이 82.4㎝로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동종 가운데 크기가 아주 큰 편에 속한다. 전체적으로 옅은 회색이 감돌고 있어, 크기에 비해 조금은 가벼운 느낌을 준다. 종의 형태는 천판(天板)에서 종구까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내려와 바깥으로 벌어지는 모양을 보인다. 둥글고 높게 솟은 천판 위에는 두 마리 용으로 구성된 종뉴(鍾鈕)를 부착하였는데, 우리나라 전통 동종의 특징인 음통(音筒)이 없고, 용의 머리와 비늘의 표현은 매우 소략한 편이다. 천판 바로 밑에는 원권(圓圈)을 갖춘 범자(梵字)를 2줄로 부조하였는데, 동일한 범자를 2개 혹은 3개씩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어, 정확히 어떤 내용의 진언을 표기하였는지 알 수 없다. 범자 밑에는 얕은 당초문 띠에 9개의 만개한 연꽃을 장식한 사다리꼴 연곽(蓮廓) 4개를 배치하였으며, 그 사이사이에 두 손을 합장하고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3구의 보살 입상을 세트로 구성하여 장식하였다. 그리고 종구보다 조금 높은 곳에는 얕은 부조로 도식화된 연화당초문(蓮花唐草文)을 둘렀다.

특징

옥천사반종은 그 동안 18세기 중 · 후반을 대표하는 일반인 사장(私匠) 출신 주종장 이만중이 보조 장인 한 명과 함께 제작한 작품으로 알려져 왔다. ‘도편수 이만중, 백예적’이라 한 주종기의 내용에서 백예적을 보조 장인으로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이만중과 백예적은 각자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활동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만중은 경상도 이씨 일파(慶尙道 李氏一派)의 구성원 중 한 명으로, 1767년 문경 대승사동종(현재 불명, 『대승사지大乘寺誌』)부터 1788년 무주 안국사동종까지 약 21년 동안 총 6점의 동종을 제작하였다. 그는 대체로 5070㎝ 크기의 동종을 보조 장인 없이 단독으로 제작하였다. 반면에 백예적은 주로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이만중 보다 7년 빠른 1760년 목포 달성사동종 제작을 시작으로 1776년 고성 옥천사반종까지 약 16년 동안 5점의 동종과 1점의 금고를 제작하였다. 그도 주로 5070㎝ 크기의 작은 동종을 제작하였지만, 이만중과는 달리 보조 장인 또는 다른 유파의 주종장과 함께 작업을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주종장의 명칭은 도편수 이만중과 백예적의 순서로 되어 있지만, 동종 제작은 이들의 공동 작업을 통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당시 두 인물이 동일한 시기에 자신만의 작품 양식을 유지하며 활동하였고, 주요 활동 지역도 경상도와 전라도로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고성 옥천사반종 제작에 참여한 두 인물은 모두 우두머리 장인[수장(首匠)]으로 판단되며, 이렇게 독자적 활동을 진행하던 두 인물이 하나의 동종을 같이 제작한 이유는 동종의 크기가 100㎝가 넘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종뉴가 망실되기 이전에 100㎝가 넘는 크기로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1788년 무주 안국사동종의 경우, 주종장 이만중과 함께 대구 출신 권동삼(權東三)이 도편수로 참여하고 있어 수장의 공동 작업을 증명해 준다.

동종의 양식에서도 공동 작업의 양상이 엿보인다. 천판 밑에 부조된 원권의 범자, 얕은 당초문이 장식된 사다리꼴 연곽, 연곽 사이에 장식된 합장형 보살 입상, 그리고 종구에 표현된 연화당초문 등 종신을 장식한 도안의 구성은 이만중이 제작한 보은 법주사동종(1785년), 무주 안국사동종(1788년)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는 특징이다. 반면에 둥글고 높은 천판은 백예적이 제작한 목포 달성사동종(1760년), 완주 안심사동종(1760년), 함양 백운암 동종(1767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옥천사반종은 18세기 중 · 후반에 경상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만중과 같은 시기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백예적이 함께 제작한 작품이다. 이 동종은 독립 유파를 구성하던 주종장이 필요에 따라 다른 유파의 주종장과 공동 작업을 진행하였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 18세기 주종장의 체계와 분업 관계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조선 후기 승장 인명사전: 공예와 전적』(안귀숙·최선일, 양사재, 2009)
「조선 후기 범종과 주종장 연구」(김수현,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조선 후기 주종장 사인비구에 관한 연구」(안귀숙, 『불교미술』 9, 동국대학교 박물관, 1988)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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