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5년(고종 22)홍복원(洪福源)을 앞세운 적장 탕구(唐古)는, 전처럼 고려 조정과 교섭을 하지 않고 무조건 전국토를 유린하였다.
1236년 9월에는 남경(南京 : 지금의 서울)ㆍ평택ㆍ아주(牙州 :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를 거쳐 온수를 침범하였다. 이 때 군리(郡吏) 현려(玄呂) 등이 나가 싸워 몽고군을 물리치고 200여 명을 죽이고 많은 무기를 노획하였다.
이 공으로 현려는 호장(戶長)으로 승진되었고, 음우(陰祐)가 있다고 하여 온수의 성황신에게는 신호(神號)를 가봉(加封)하였다. 이 전투는 몽고의 침입 때 여러 곳에서 거둔 승전 가운데 하나로서, 특히 이들의 승리가 향리에 의하여 지휘된 주민들의 공헌이었던 점에 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