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권 3책. 필사본. 저자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다만 그의 글인 「고판서민공행장(故判書閔公行狀)」 말미의 1781년(정조 5)에 썼다는 기록으로 보아 영조·정조 시대의 인물로 추정된다. 이 책의 간행 경위 역시 미상이며, 초고본으로 보인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2에 시 756수, 부(賦) 1편, 권3에 서(書) 5편, 서(序) 4편, 기(記) 15편, 설(說) 5편, 논(論) 1편, 상량문 1편, 제문 17편, 애사 1편, 권선문(勸善文) 1편, 잡지(雜識) 2편, 행장 1편, 발(跋) 3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 중 「화당시(和唐詩)」 43수와 「서강옥호루(西江玉壺樓)」 12수는 당시(唐詩)의 호방함을 모방하여 우주의 거대한 이치, 고금 인물의 흥망, 국가의 성쇠와 그 배경이 되는 경치의 아름다움 등을 표현한 것이다.
서(書)의 「상사윤찬선서(上謝尹贊善書)」와 「여민금산(與閔錦山)」에서는 학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경전의 해석, 가례의 해설 등을 논의하였다.
설 중 「향약설(鄕約說)」에서는 향약이 자치로써 마을을 다스려 풍속을 순화시키는 것이라고 전제하며, 그 기원은 오래되었으나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향약이 주종이라고 설명하였다. 「연객설(烟客說)」에서는 담배 수입에 대해 언급하고 담뱃대의 용도가 다양하여 선비들의 행구에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설명하였다.
권선문은 불교 신앙을 바탕으로 선행을 권면한 글이다. 이밖에도 산신과 들에 제사를 지낸 「용정리산제문(龍井里山祭文)」과 「야제문(野祭文)」, 백이(伯夷)와 태공(太公)은 모두 성인으로 그 도를 함께 행해도 모순이 없다고 한 「백이태공병행불패론(伯夷太公幷行不悖論)」, 남곽의 아름다운 경치와 주인의 지조를 묘사한 「남곽기(南郭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