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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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칭
  • 이칭왕국신(王國臣)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51년 12월 24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2년(고종 9) 10월 26일
  • 출생지경기도 화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진봉 (충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3월 28일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왕광연 전후면 미디어 정보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왕광연 전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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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개설

일명 왕국신(王國臣). 경기도 화성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3월 26일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의 면사무소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1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사강장날인 28일 해산명령에 굴하지 않고 계속 독립만세운동을 지휘하던 홍면(洪(土+冕)0x9637)의 어깨에 일본경찰 노구치[野口廣三]가 관통상을 입혔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노구치는 분노한 군중을 두려워하여 사강주재소 쪽으로 도망가고 난 뒤였다.

이에 홍면의 동생 홍준옥(洪㻐玉), 장인 김명제(金命濟), 그리고 문상익(文相翊) · 김교창(金敎昌) · 김용준(金容俊) 등과 함께 추격하여 주재소에 미처 도착하지 못한 노구치를 도로에서 살해하는 등, 격렬하게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잡혀 1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자료집』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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