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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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국왕의 후궁 소생인 왕자의 교육을 위해 설치한 종9품의 특별 관직.
제도/관직
설치 시기
1491년(성종 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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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왕자사부는 조선시대에 국왕의 후궁 소생인 왕자의 교육을 위해 설치한 종9품의 특별 관직이다. 성종 대에 처음 두었다. 제도상 왕자가 있을 때에만 한시적으로 두는 특별 관직으로 900일을 근무한 후 6품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목차
정의
조선시대, 국왕의 후궁 소생인 왕자의 교육을 위해 설치한 종9품의 특별 관직.
설치

경국대전』에는 국왕의 후궁 소생인 왕자의 교육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정이 없다. 어릴 때는 내시의 교육을 담당하는 내시교관에게 수업을 받고 혼인하여 궁을 나가면 종실의 일원으로 종학(宗學)에서 수학하였다. 1491년(성종 22년) 무렵부터 비로소 왕자사부를 두고 출궁 전의 왕자들을 교육하기 시작하였다.

왕자사부를 두는 시점은 일정하지 않았다. 중종(재위: 1506~1544) 때는 첫째 왕자인 복성군이 3세 때 처음 왕자사부를 두었으나 선조 때는 첫째 왕자인 임해군이 7세 때 왕자사부를 두었다. 인조 · 숙종 · 고종 때는 첫째 왕자인 숭선군, 연잉군, 완화군이 10세가 될 때 왕자사부를 두었다.

직제

왕자사부는 왕자가 있을 때만 설치하는 특별 관직으로 처음부터 일정한 직제를 마련하지는 않았다. 인원은 성종(재위: 1469~1494) 대에는 3명이었으나 선조(재위:  1567~1608) 대에는 2명을 두었다. 인조(재위: 1623~1649) 대 이후에는 1명을 두고, 여러 명의 왕자를 함께 가르치게 하였다.

1704년(숙종 30)에는 왕자사부를 두면서 교관(敎官)의 예에 따라 군직(軍職)을 주어 체아록(遞兒祿)을 받도록 하였다. 『 대전통편』에는 동몽교관, 내시교관, 대군사부와 함께 권설직(權設職)의 하나로 수록되어 있다.

종9품으로 사과(司果) 이하의 체아록을 받으며, 900일을 근무한 후 6품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원전 『조선왕조실록』

『대전통편』
박광전, 『죽천집(竹川集)』
『승정원일기』

단행본

육수화, 『조선시대 왕실교육』(민속원, 2008)

논문

정재훈, 「세종의 왕자 교육」(『한국사상과 문화』 31, 한국사상문화학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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