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계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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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서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4년에 간행한 시문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해권 (고려대학교도서관,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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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서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4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3권 2책. 목판본. 1894년(고종 31) 후손 수열(壽烈)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강태중(姜泰重)의 서문, 권말에 김대곤(金大坤)의 발문이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179수, 권2에 전(傳) 2편, 책(策) 3편, 소(疏) 3편, 묘갈 4편, 권3에 연보, 부록으로 행장·묘표·수비고유문(竪碑告由文) 각 1편, 서(書) 6편, 동도회첩(同道會帖)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책 중 「왕약왈약서맹호운운(王若曰約誓盟好云云)」에서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은 우리가 강인하지 못해서 자초한 것이니, 자강(自彊)하려면 덕을 닦고, 장수를 선발하고, 인화(人和)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소의 「상진팔로아록급청위차전소(上陳八路衙祿及請爲車戰疏)」에서는 첫째로 각 읍의 수령이 녹봉과 공수전(公須田)을 받고도 여러 명목으로 세금을 받고, 또 편하고 봉급이 많은 외직으로 임명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 등 시폐를 지적, 시정을 촉구하였고, 둘째로 왜적을 방어하는 데는 수군만을 믿을 수 없으니, 정예부대를 선발하여 요해처에 주둔시켜놓았다가 왜적이 육지로 올라올 때 공격하게 하고, 병기를 개혁하며, 수레를 만들어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인천재겸진시폐소(因天災兼陳時弊疏)」에서는 천재지변이 까닭 없이 생기지 않는 것이니, 모든 정치를 자세히 살피고 심사숙고하여 처리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고 전제하고, 당시의 폐단을 지적, 시정을 촉구하였다. 연보는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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