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2책. 목판본. 1894년(고종 31) 후손 수열(壽烈)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강태중(姜泰重)의 서문, 권말에 김대곤(金大坤)의 발문이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179수, 권2에 전(傳) 2편, 책(策) 3편, 소(疏) 3편, 묘갈 4편, 권3에 연보, 부록으로 행장·묘표·수비고유문(竪碑告由文) 각 1편, 서(書) 6편, 동도회첩(同道會帖)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책 중 「왕약왈약서맹호운운(王若曰約誓盟好云云)」에서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은 우리가 강인하지 못해서 자초한 것이니, 자강(自彊)하려면 덕을 닦고, 장수를 선발하고, 인화(人和)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소의 「상진팔로아록급청위차전소(上陳八路衙祿及請爲車戰疏)」에서는 첫째로 각 읍의 수령이 녹봉과 공수전(公須田)을 받고도 여러 명목으로 세금을 받고, 또 편하고 봉급이 많은 외직으로 임명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 등 시폐를 지적, 시정을 촉구하였고, 둘째로 왜적을 방어하는 데는 수군만을 믿을 수 없으니, 정예부대를 선발하여 요해처에 주둔시켜놓았다가 왜적이 육지로 올라올 때 공격하게 하고, 병기를 개혁하며, 수레를 만들어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인천재겸진시폐소(因天災兼陳時弊疏)」에서는 천재지변이 까닭 없이 생기지 않는 것이니, 모든 정치를 자세히 살피고 심사숙고하여 처리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고 전제하고, 당시의 폐단을 지적, 시정을 촉구하였다. 연보는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