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31본산이 지정된 때에는 유점사(楡岾寺)의 말사였다. 삼국시대에 와룡조사(臥龍祖師)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창건연대는 미상이다. 와룡은 중국 달마대사(達磨大師)의 후신(後身)이라는 전설이 있는데, 왕실의 각별한 배려로 군공(郡貢)을 받았으므로 용공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태종·문종·세조·성종·인종·명종·선조·인조·효종 등의 아홉 임금이 이 절을 사모하여 어필을 하사하였다.
1523년(중종 18)에 중창하였고, 1718년(숙종 44)에 청계선사(淸溪禪師)가 신일리에 있던 이 절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오면서 용공사라고 편액하였다. 그 뒤 1860(철종 11)의 산불로 인하여 5법당과 8요사가 완전히 소실되었는데, 김시연(金始淵)이 내탕금(內帑金) 1만5000냥을 얻어 중건하였다. 그러나 1884년(고종 21)에 도둑떼들에 의하여 요사채와 승방 등이 불타 버렸고, 이에 김규석(金奎錫)이 공명첩(空名帖) 500장을 돌린 뒤 중건하였다. 1903년에 다시 화재로 법당과 어실각(御室閣)을 남기고 모두 소실되었으나 그 뒤 다시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極樂寶殿)·영산전(靈山殿)·해장전(海藏殿)·연루전(蓮樓殿)·어실각·산신각·하별당(下別堂)·양로당(養老堂) 등이 있다. 법당에 봉안된 불상으로는 극락전의 목조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하여, 영산전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한 삼세불(三世佛) 등 모두 9불이 봉안되어 있다. 또, 탱화로는 후불탱화(後佛幀畵) 3점, 감로탱화(甘露幀畵) 3점 등 총 19점이 봉안되어 있다. 사보(寺寶)로는 오동향로(烏銅香爐)와 범종(梵鐘)이 있고, 유암선사비(柳巖禪師碑)와 설송당대선사비(雪松堂大禪師碑)·철웅대사비(徹雄大師碑) 등이 있다. 또, 부도로는 중봉탑(中峰塔)·환송당탑(喚松堂塔)·도암당탑(道庵堂塔) 등이 있고, 진영(眞影)으로는 유암선사의 영정 외에 19점이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