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崔濟愚)의 탄생지로, 무극대도를 한울님으로부터 받아 포덕을 시작한 천도교의 발상지이며, 대구에서 처형당한 교조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경주시에서 서쪽으로 약 12㎞에 가정리가 있고 그 앞산이 바로 구미산(龜尾山)이며, 그 산 계곡에 용담정이 있다.
용담정은 도학으로 이름 높았던 최제우의 아버지 최옥(崔○)이 나이 60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 구미산 계곡에서 시를 읊조리며 소일하던 곳이다. 최옥은 나이 63세 되던 해 한씨를 세번째 부인으로 맞아 1824년 10월 28일 최제우를 낳았다. 태어나던 날 구미산이 사흘 동안 크게 진동하였다고 한다.
용담에서 난 최제우는 장년이 되어 제세안민(濟世安民)의 도(道)를 찾고자 10여 년간 전국을 순회하다가 가산만 탕진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자, 착잡한 심경으로 다시 용담정으로 돌아와 각도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1860년 4월 5일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는 한울님의 계시를 받아 무극대도를 이루었다. 그는 〈용담가〉를 지어 이 득도의 과정과 내용을 서술하였는데, 〈용담가〉라는 가사의 명칭은 용담정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리고 포덕을 행한 곳곳에서 신도들이 용담정으로 모여들어 불과 1년이 되지 않아 수 만의 신도가 운집하였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이를 ‘이단지도(異端之道)’라 하여 ‘좌도난정(左道難正)’이라는 죄명으로 그를 참형에 처하였다.
그 뒤 제자들이 그의 유해를 거두어 구미산 기슭에 안장하였으나 역적의 연고지로 지명된 이곳은 상당기간 황폐하게 방치되었다. 그러던 중 1968년 4월 현지에 있는 교인들의 성금으로 정화되기 시작한 이곳을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직접 관할하게 되었고, 1974년구미산 일대가 경주국립공원권에 편입됨에 따라 본격적인 성역화운동이 전개되었다.
1975년 2월 천도교는 구미용담성역화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거교적인 사업으로 용담정 · 포덕문 · 용담정사 · 성화문 등을 건립하여 성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에 따라 천도교에서는 가정리를 중심으로 한 일대에서 천도교의 지상천국을 의미하는 궁을촌운동을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