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쓰기 시작한 1907년 2월 16일(음)부터 3월 말까지는 도서 구입을 위한 혼춘(琿春) 여행기로 1개월 반을 종합하여 기술했다. 그러나 이후 4월 1일부터 일기를 끝낸 1921년 10월 17일(음)까지는 하루하루 날짜별로 기록했다.
17권 18책이다. 총 2,044면으로, 모필(毛筆) 한 장본이다.
제1권만 두 책으로 분책되어 ‘회양재일기’(回陽齋日記, 제1책), ‘용연산방일기’(龍淵山房日記, 제2책)로 표제되어 있으나, 나머지 책에는 모두 ‘야사’(野史)로 표제되어 있다. 이 점은 본서가 처음에는 일기로 시작했으나 이 후 동시대의 생생한 기록을 위한 야사로 기술되었음을 의미한다.
내용상으로도 필자 주변의 신상잡기보다도 일제의 침략상과 항일독립운동의 ‘고심혈통’(苦心血痛)의 기록이 압도적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일기체의 기술이기 때문에 체제상으로 특별히 구분 지을 수는 없으나, 기술 시기와 지역을 기준으로 하여 크게 양분할 수 있다. 전반부는 필자가 고향인 함북 경성(鏡城)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전을 수행한 뒤 국외 망명을 떠나는 1909년 7월까지의 기록이다. 후반부는 필자가 북간도로 망명한 뒤 두만강 접경지대에서 벌어지는 항일민족운동의 실상을 기록한 것이다.
현재 독립기념관에 원본이 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1994년에 3책으로 영인·간행했다.
이 일기에서 가장 먼저 주목되는 내용은 1907년부터 3·1운동 직후까지 관북과 두만강 대안, 곧 북간도·연해주 등지에서 벌어진 의병과 독립군 등의 독립운동 관련 기술이다. 특히, 경성의병(鏡城義兵)의 활동과 의군부(義軍府)의 동향 등에 관해서는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그 가운데는 유인석을 비롯해 조맹선(趙孟善)·이남기(李南基)·조상갑(趙尙甲)·이상설(李相卨)·현천묵(玄天默) 등 독립운동가들의 동향을 밝혀 주는 기록들도 간간이 보인다.
다음으로 주목되는 것은 한국 통사의 성격을 가지는 ‘대한사’(大韓史)를 수록한 점이다. ‘대한사’에서 필자는 한국인의 자국사에 대한 이해 부족을 비판하면서 충군애국의 역사의식을 강조했다. 그 속에는 사료 가치가 높은 「폐사군고사(廢四郡故事)」·「경흥부적도사적비(慶興府赤島事蹟碑)」·「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 등의 자료와 간도 감계(勘界) 및 경략에 관한 새로운 내용들도 소개되어 있다.
끝으로, 세계 각국의 역사와 중요 도시, 그리고 종교 등에 관해 풍부하게 기술하고 있다. 유생으로 위정척사론자였던 필자가 간도 망명 후 세계의 신사조와 종교 및 사회체제 등에 대해 이해하려고 시도한 흔적인 것이다.
이 일기는 1910년 전후부터 1920년대 초까지 활발하게 전개된 두만강 양안지역의 항일민족운동에 직접 참여한 한 인물이 남긴 생생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 분야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