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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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때, 황해도 구월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관서일대에서 정동의려대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08년(순종 1)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0년(고종 7)
  • 출생지황해도 문화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흥수 (춘천교육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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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때, 황해도 구월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관서일대에서 정동의려대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개설

황해도 문화군(文化郡: 지금의 황해도 신천군) 출신. 우용상(禹鏞相)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황해도 구월산(九月山)에서 의병을 일으켜 신천·재령·안악·은율 등 관서일대에서 정동의려대장(正東義旅大將)으로 추대되어 일본군을 습격하여 다수의 일본군을 살상하였다.

이 때 그의 휘하에는 소대장 조윤봉(趙允奉)과 경리 이진태(李振台)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사격의 명수로 크게 이름을 떨쳤다. 황제의 선유위원(宣諭委員) 서상륜(徐相崙)이 가져온 해산을 권고하는 칙서를 보고 “황은(皇恩)이 망극하나 역적 이완용(李完用)과 일본군사령관 하세가와[長谷川好道]가 서명하였으므로 역적에게 항복할 수 없다”고 하면서 계속 항전하였다.

그러나 적과 교전중 다리에 적탄을 맞아 체포, 감금되었는데, 감옥에서 감시병의 총을 빼앗아 일본군 8명을 사살하고 끝까지 교전하다 적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 -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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