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총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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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우체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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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말기 우체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
내용

1884년(고종 21) 3월 27일에 설치되고, 3월 28일 책임자로 홍영식(洪英植)이 임명되어 법령을 마련하는 등 개국 준비를 하였다. 그 해 10월 1일 처음으로 우체 업무를 시작하였다. 직제는 총판(總辦)·방판(幇辦) 각 1인과 그 아래에 3과 15부를 두었다. 3과는 규획과(規劃課)·발착과·계산과였다.

1884년 5월에 일본인 실무자 2명을 고용하였다. 중앙에 우정총국을 두고 각 지방에 우정분국(실제로 인천에 인천분국을 설치하였다.)과 우정수취소(郵征受取所)·우초매하소(郵鈔賣下所)를 설치하도록 계획되었다. 우정총국 청사는 전동(典洞)에 있었다. 독립기구로 설치되었으며, 다른 관청과의 관계는 알 수 없다.

1884년 12월 8일(음력으로 10월 21일)에 폐지됐는데, 12월 4일(음력으로 10월 17일)에 우정국 개설축하연을 이용해 갑신정변이 일어났으나 실패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폐지된 이후에도 우체 업무는 계속되어, 실제로 우체 업무가 마감된 것은 음력 11월 20일이었고 인천분국은 음력 12월 1일에야 폐쇄되었다.

의의와 평가

폐지 이후 부활 논의도 있었지만 1893년에 가서야 전우총국(電郵總局)으로 이어졌고, 이후 1894년 공무아문역체국, 1895년 농상공부통신국, 1900년 통신원 등으로 이어졌다. 우정총국은 최초의 근대식 우체기관이라는 점과 갑신정변과의 관련 등이 강조되기 쉽지만 그 한계 또한 적지 않았다.

즉, 우정총국은 국내우체 업무보다 국제우체에 주력한 것 같은데, 국내우체 업무 시작 이전에 이미 외국과의 우체물 교환조약 체결을 추진해, 4월에 일본·홍콩과 약정을 맺었고, 만국우편연합(UPU) 가입도 추진하고 있었다. 1876년 11월 부산에 우편국을 설치한 이래 조선에 독자적인 우편선로를 가지고 있던 일본의 우편조직을 없애려고 했던 점은 인정된다.

참고문헌

『한국우정 100년사』(체신부, 1984)
『한국우정사』(체신부,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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