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석인본. 1948년 8대손 상호(相鎬)·상한(相漢) 등이 편집하였고, 1960년 9대손 종희(琮熙)·노윤(魯允) 등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금용하(琴鏞夏)·김종구(金鍾九) 등의 서문이, 권말에 상한·종희·노윤 등의 발문이 있다. 성암고서박물관,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220수, 만사 15수, 권2에 소(疏) 5편, 계사 9편, 차(箚) 1편, 권3에 서(書) 17편, 잡저 3편, 축문 7편, 제문 2편, 권4에 부록으로 만장 82수, 제문 17편, 행장 1편, 묘갈명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1667년(현종 8) 이후 6년간 옥구현감으로 재직할 때 호남의 풍경과 산수를 서술한 것과, 1674년 원양도사(原襄都事)로 모부인(母夫人)의 집상(執喪) 3년 동안에 저술한 것, 1677년 단양 배소에서 수창한 것이 대부분이다.
소 중 「사수찬소(辭修撰疏)」는 1659년 효종이 죽었을 때 모후인 조대비(趙大妃)의 복상을 1년으로 결정하게 한 송시열(宋時烈)의 죄상을 강력히 논박하고, 그 때의 일을 종묘에 고유하지 않은 것은 조정의 큰 결점이라 지적한 것이다.
계사의 「청찬장악정조가석계(請竄掌樂正趙嘉錫啓)」·「논기해오례청고묘계(論己亥誤禮請告廟啓)」 등 역시 송시열의 죄상을 하늘이 알고 사람이 아는데도 그의 억울함을 벗겨달라고 한 것은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라는 점, 또 대비의 복제(服制)문제는 종사의 더 없이 큰 일인데도 지금까지 선왕(先王)에게 고하지 않았음을 지적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