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고종 5) 조인영의 사위 김학성(金學性)과 손자 조영하(趙寧夏)에 의해 간행되었다. 권두에 윤정현(尹定鉉)·김학성의 서문, 권말에 조영하의 발문이 있다.
20권 10책. 전사자본(全史字本). 규장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4에 시 609수, 권5∼7에 소차 75편, 권8에 계(啓) 17편, 주(奏) 11편, 의(議) 11편, 권9에 서(序) 23편, 권10에 기(記) 19편, 잡저 7편, 권11에 응제문 31편, 권12에 제문 15편, 비명 6편, 묘갈 4편, 권13에 묘갈 9편, 묘표 10편, 권14에 지문(誌文) 1편, 행장 3편, 권15에 가장 2편, 권16∼20에 시장(諡狀) 2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차의 「옥당연소(玉堂聯疏)」는 전후 여섯 차례에 걸쳐 올린 것으로, 왕실예제(王室禮制)에 관해 소를 올린 유신(儒臣)들을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청호남재읍대동결전정퇴서(請湖南灾邑大同結錢停退書)」는 호남지방의대동미(大同米)와, 전결(田結)에 덧붙여 거두어들이던 돈인 결전(結錢)을 재난지역에 한해 감면해주자는 주장이다.
계 중 「청수렴빈청계(請垂簾賓廳啓)」는 1834년 순조가 죽고 어린 헌종이 즉위하자, 대비(大妃)에게 수렴청정을 권한 글이다. 당시의 대비는 그의 형 조만영(趙萬永)의 딸로, 대비의 수렴청정은 곧 조씨 일가의 집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청각도도통철향서원사유잉칙재행별천계(請各道道統腏享書院賜侑仍飭才行別薦啓)」는 서학(西學)에 대한 척사윤음(斥邪綸音)을 내린 뒤, 근본적인 대응책으로 각 도의 도통을 전해오는 서원을 배향(配享)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 서원으로 하여금 산속에 숨어 있는 유일(遺逸)들을 천거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단을 배척하고 정학(正學)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서원에 봉향된 유현(儒賢)을 잘 제향하여 유풍(儒風)을 진작해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각 지방별로 해당 서원을 열거하였다.
「청전조선통용계(請戰漕船通用啓)」는 각처에 송림(松林)을 육성하여 그곳에서 생산되는 목재로 전선(戰船)을 만들어 유사시에 대비해야 한다고 하였다. 선체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평상시에는 조운선(漕運船)으로 이용하여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청청백리초록계(請淸白吏抄錄啓)」는 1795년(정조 19) 고(故) 상신(相臣)인 윤시동(尹蓍東)·조현명(趙顯命) 등을 청백리에 추천하기로 했는데 아직 실시하지 못했으므로, 조사하여 첨록(添錄)하자는 내용이다.
「청신명사조법금계(請申明四條法禁啓)」는 모내기·산허리에 화전(火田) 만들기·사사로운 도축·제방 안쪽을 개간하기 등의 금지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이 중 모내기를 금지하는 것은 제방의 불비(不備)와 만성적인 흉년에 기인한 것으로, 화전과 사사로운 도축을 금지하라는 내용과 함께 조선 후기의 농업 연구에 참고가 되는 자료들이다.
기 중 「존덕당기(尊德堂記)」는 서원의 성격을 잘 표현한 글이다. 서원은 선현을 제사 지내는 것만이 아니라 선현의 학문과 행실을 본받고 강수(講修)하는 곳이라 하며, 송시열(宋時烈)·권상하(權尙夏) 등을 선현으로 들었다. 이들은 그의 학통이며 또한 노론의 계보와도 일치하는 연원이다.
잡저 중 「설악변(雪岳辨)」은 금강산의 명칭에 대한 고증이다. 금강산은 금강(金剛)·개골(皆骨)·열반(涅槃)·풍악(楓岳)·지달(枳怛) 등 다섯 가지 명칭이 있다고 하였다. 이밖에도 설악이라는 이름도 금강산의 일명임을 고증을 들어 변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