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김진현의 아들 김영도(金永燾)와 조카 김영만(金永滿)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이가원(李家源)의 서문과 권말에 노문영(盧文永)의 발문이 있다.
6권 6책. 석인본. 고려대학교 도서관·전남대학교 도서관·단국대학교 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부(賦) 4편, 시 553수, 권2에 서(書) 185편, 권3에 서(序) 18편, 기(記) 23편, 발(跋) 23편, 권4에 잡저 35편, 제문 20편, 상량문 2편, 권5에 비문 6편, 묘갈명 8편, 묘표 12편, 행록 6편, 행장 14편, 전(傳) 2편, 권6에 부록으로 설(說)·의(意)·하(賀)·기(記)·만사 각 1편, 서(序) 3편, 축(軸) 2편, 행장, 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잡저의 「존주해(尊周解)」는 존주대의(尊周大義)를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대명(大明)을 주(周)로 하고 우리나라를 존(尊)으로 삼아야 한다 하여, 망국의 실의 속에 민족 주체성에 대한 개아(個我)의 각성이 엿보인다. 「민위귀론(民爲貴論)」은 존귀한 것으로 인군(人君) 같은 이가 없지만, 인군은 백성이 아니면 존귀할 수 없기 때문에 백성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며 백성의 귀중함을 역설한 논설이다. 백성들의 생업을 편안하게 함으로써 천하태평을 이룩할 수 있음을 강조하여, 정치하는 이의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공사변(公私辨)」은 공과 사의 구별을 엄정하게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인물변(人物辨)」은 인간은 귀천의 차이 없이 도덕적 품성을 갖추는 것만이 진보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언행변(言行辨)」은 언행을 삼가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다.
「삼산재배송사선생수의문목(三山齋陪松沙先生隨疑問目)」은 1897년 기우만의 문하에서 수학할 때 기록한 것이다. 경전 연구 중 의심난 곳을 간추려 질의 응답한 내용이다. 경의(經義)뿐만 아니라 상례·제례·호칭 문제도 언급하고 있어 주목된다.
「경술기사(庚戌記事)」는 1910년 경술국치 후 당시 덕망 있는 인물의 회유책으로 자행되던 일본 천황의 은전(恩典)이라는 대장에 날인하라는 일본 경찰의 회유와 여기에 대처한 자신의 태도를 기술한 것이다. 「신담록(薪膽錄)」은 1911년 기우만이 남원시 서림주재소에 출두하여 일본 경찰에게 문초받은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그밖에 우사(寓舍)에서 발견된 의병장과 주고받은 서신 및 의병활동·의관·복식·학문·은전 등에 걸쳐 진행된 문답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