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20항목으로 구성해 대원군의 국가를 경영하는 시책과 수신제가(修身齊家)의 내용을 편찬하려고 했으나 현재 10항목만 남아 있다.
내용은 1864년(고종1)부터 1871년까지 8년 간의 정치적 사건에 관한 사항이 수록되어 있다.
우선 대원군이 고종을 잘 보필한 것을 중국 주나라의 주공이 성왕을 도와 섭정한 것에 비교해 칭송하였다. 그리고 『선원속보(璿源續譜)』를 간행하고 선파(璿派)의 종손을 발탁하며 종친을 위해 문과와 생원진사시를 실시하고 대종회(大宗會)를 여는 등에 관한 사항이 수록되어 있다.
경복궁 중건에 대해서는 대원군의 토목공사가 국가적인 중대사업으로서 원납전의 징수도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보았다. 이 토목공사에 앞서 나온 참서(讖書)에 대해서도 대원군의 입장을 옹호하는 선에서 서술하고 있다.
한편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맞아 대원군의 척양에 대해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는 당시 전시체제에서 오직 대원군이 국난을 극복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원군이 삼군부를 다시 세우고 강화부를 진무영(鎭撫營)으로 승격시켜 영조도감(營造都監)을 따로 설치하고 성곽과 누로(樓櫓)를 보수해 군량을 비축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또 전국 각도의 병영으로 하여금 포과(砲科)를 설치하게 하여 각 읍진(邑鎭)과 변경요충지에 포군(砲軍)을 배치한 사실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또한 정치적으로 금고되어 있던 인물을 복권하고 노론·소론·남인·북인을 골고루 등용한 사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편 전국의 서원을 훼철하고 47개만 남긴 사실과 양반에게 호포를 징수한 일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1868년 사창법을 실시하고 각 고을의 전부(田賦)를 복원해 조적(糶糴)에서 취모법(取耗法)의 폐단을 근절시켰다고 하였다.
이 책은 대원군을 매우 긍정적인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아세아문화사에서 『서벽외사해외수일본총서(栖碧外史海外蒐佚本叢書)』로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