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색필사본으로 세로 110.1㎝, 가로 65.7㎝이다.
1881년(고종 18) 수토관(搜討官)에 의해 울릉도에서 도벌(盜伐) 중이던 일본인 7명이 적발된 사건을 계기로 조정에서는 1882년 이규원을 울릉도 검찰사에 임명하고 현지에 파견하여 일본인들의 왕래를 살피고 울릉도의 지형과 주변의 섬을 조사하도록 했다. 이규원은 1882년 4월 30일부터 5월 10일까지 11일간 체류하면서 조사한 내용을 지도와 함께 보고하였다. 이때 2장의 지도를 제작하였으며, 이 지도는「울릉도내도」와 「울릉도외도」라는 명칭으로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울릉도내도」는 울릉도 안쪽에서 바다 쪽을 바라본 시점으로 그린 개화식(開花式) 구도이다. 산지를 중심으로 그려진 이 지도는 동서쪽에는 성인봉(聖人峰)·도덕봉(道德峯)‚ 동북쪽에는 활인봉(活人峯)·장군봉(將軍峯)·축융봉(祝融峯)·신선봉(神僊峯)이 있고‚ 서북쪽에는 추봉(錐峯)·항봉(恒峯)·형봉(衡峯)·숭봉(嵩峯)‚ 서남쪽에는 태봉(泰峯)·기린봉(麒麟峯)·옥녀봉(玉女峰)·화봉(華峯)이 성곽같이 둘러싸고 있다.
화면 중앙에 그려진 나리동(羅里洞)의 실제 위치는 북쪽으로 상당히 치우쳐 있으나 지도에서는 중심에서 크게 부각되었다. 이는 이규원이 이곳을 읍을 설치할 수 있는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평평하고 넓은 땅이라고 보고한 내용을 의도적으로 강조해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리동 중앙에는 내장(內長)과 내광(內廣)의 거리가 기재되어 있고 서북쪽에는 대택(大澤)과 2개의 소지(小池)가 그려져 있다. 북쪽 신선봉 아래 홍문가(紅門街)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도로가 나 있으며 활인봉, 도덕봉, 그리고 성인봉과 화봉, 화봉과 옥녀봉 사이에는 작은 계류(溪流)가 흐른다. 주변 해안을 자세하게 묘사한 「울릉도외도」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소략하다.
「울릉도내도」는 실제 현지 조사를 토대로 작성한 지도로서 기존의 울릉도 지도에서 보이는 관성에서 벗어난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지도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