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외도 ()

울릉도외도
울릉도외도
인문지리
문헌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이 울릉도의 지형과 주변의 섬을 조사하여 1882년에 제작한 지도. 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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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이 울릉도의 지형과 주변의 섬을 조사하여 1882년에 제작한 지도. 고지도.
서지적 사항

채색필사본으로 세로 135.8㎝, 가로 98.4㎝이다.

내용

울릉도는 예로부터 울릉도(蔚陵島), 우릉도(羽陵島), 우릉도(芋陵島), 무릉도(武陵島) 등으로 불리었다. 울릉도는 조선시대 내내 공도정책(空島政策)이 시행되다가 임진왜란을 겪은 후, 울릉도를 둘러싸고 일본인과의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1694년(숙종 20) 안용복(安龍福) 사건이 알려지면서 울릉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였고 1697년(숙종 23)에는 3년에 한 번씩 정식으로 울릉도의 내부와 주변 해안을 살피는 수토정책(搜討政策)으로 바뀌었다. 수토를 마치면 울릉도의 지도와 토산물을 진상했다. 1711년(숙종 37) 수토를 담당했던 삼척영장(三陟營將) 박석창(朴錫昌)이 올린 울릉도 지도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울릉도도형」이란 이름으로 전한다.

1881년(고종 18) 수토관(搜討官)에 의해 울릉도에서 도벌(盜伐) 중이던 일본인 7명이 적발된 사건을 계기로 또 다시 울릉도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1882년 이규원을 울릉도 검찰사에 임명하고 현지에 파견하여 일본인들의 왕래를 살피고 울릉도의 지형과 주변의 섬을 조사하도록 했다. 이규원은 1882년 4월 30일부터 5월 10일까지 11일간 체류하면서 조사한 내용을 지도와 함께 보고하였다. 이때 2장의 지도를 제작하였으며, 이 지도는「울릉도내도」와 「울릉도외도」라는 명칭으로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울릉도외도」는 바다 쪽에서 울릉도를 바라본 시점으로 그린 것으로, 「울릉도내도」는 산지를 중심으로 그린 개화식(開花式) 구도인데 「울릉도외도」는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그린 폐화식(閉花式) 구도이다. 섬 주위를 돌아가면서 해안 가까이에 있는 섬과 기암절벽의 특징적인 형태까지 회화적으로 잘 묘사했다.

지도의 내용은 현포(玄浦), 곡포(谷浦), 천년포(千年浦), 저포(苧浦) 등의 포구와 통구미(桶邱尾)를 비롯하여 대풍(待風), 향목(香木)‚ 대황토(大黃土)‚ 소황토(小黃土)‚ 사태(沙汰)‚ 선판(船板)‚ 웅통(雄通) 등 여러 구미(邱尾)가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바위들의 지명도 주암(胄巖)‚ 화암(華巖)‚ 봉암(鳳巖)‚ 굴암(窟巖), 창우암(倡優巖), 홍예암(虹霓巖)‚ 문암(門巖), 대암(大巖), 촉대암(燭臺巖)‚ 형제암(兄弟巖)‚ 노고암(老故巖), 쟁암(鎗巖), 장군암(將軍巖) 등 매우 상세하다.

동쪽 해안가에는 죽도(竹島)가 그려져 있다. 이전 시기의 울릉도 지도에는 죽도 위치에 우산도(于山島)라는 섬이 그려져 있는데 이 지도에서는 죽도가 제 위치에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도 중심의 나리동(羅里洞)에 대한 정보는 「울릉도내도」와 같다.

의의와 평가

「울릉도외도」는 실제 현지 조사를 토대로 해안가와 주변 섬의 위치를 정확하게 기록함으로써 기존의 울릉도 지도에서 보이는 관성에서 벗어난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지도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고쳐 쓴 울릉도와 독도』(송병기, 단국대학교 출판부, 2005)
「조선시대 지도에 표현된 울릉도·독도 인식의 변화」(오상학, 『문화역사지리』18-1, 2006)
「고지도를 통해 본 조선후기 울릉도 지리인식」(허정백, 『지역과 역사』17, 2005)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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