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일명 남산왜성(南山倭城)이라고 한다. 웅천읍성으로부터 남쪽 1㎞ 지점, 해발 184m의 남산 기슭에서 능선을 따라 산봉우리까지 뻗은 석성으로 석재는 대부분 건축자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반출되고, 지금은 산록과 산정 일부, 그리고 축대만 남아 있다.
이곳의 지형은 제포만(薺浦灣)과 안골만(安骨灣) 사이에 반도처럼 돌출한 산의 정상부에 위치하면서 북쪽으로는 웅포만(熊浦灣)을 바라보고 있으며 육로는 물론 해로로 안골포 · 마산 · 가덕도 · 거제도와 연락이 용이하여 왜군이 본국으로 철군할 경우에도 전략적 요충지였다. 성의 둘레는 1,250m이나 현재 남은 성벽의 길이는 700∼800m이며, 높이는 대개 2m 정도이다.
대형 면석(面石)을 상하로 고루 쌓고 그 사이 사이에는 작은 괴석을 채우고 70도 가량 경사를 이루고 있다. 성의 구조는 일본식으로 복잡하게 축조되어 있는데 정상부에 본성(本城)을 두고 점차 그 아래 산기슭을 따라 제1외곽(外廓), 제2외곽을 질서 있게 배치하고 있다.
넓이는 약 5,000평이며, 성의 높이는 지형에 따라 3∼8m에 이르고, 사용된 석재는 현무암과 청석이 대부분인데 가장 큰돌은 1.5×1.5×2.0m나 되는 것도 있다. 또한 해안의 선박과 연락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통로가 있으며 양 측면에는 외호(外壕)가 남아 있다.
이 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하여 남해안에 축조한 18개 왜성 가운데 하나이며 왜장 고니시(小西行長)가 진을 치고 왜군의 제2기지로 활용하였던 곳이다.
『고적조사자료』 에는 1592년(선조 25) 가토(加藤淸正)가 쌓은 성이라고 하였으나 원래는 웅포성(熊浦城)이라고 하여 왜구를 대비하기 위한 성을 임진왜란 때 왜군이 개축하여 사용하였다고 생각된다.
당시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세스페데스(Cespedes, G.) 신부가 이곳에 와서 활동하다가 이후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전한다. 그 동안 증개축이 없었으므로 인접한 안골포 · 가덕도 · 거제도에 있는 왜성과 함께 16세기 왜성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