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사례(士禮). 원효이(元孝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원중거(元仲秬)이다. 아버지는 보공장군(保功將軍) 원순조(元順祖)이며, 어머니는 장옥견(張玉堅)의 딸이다. 대사헌 원계채(元繼蔡)의 동생이다.
1525년(중종 20) 진사가 되었고, 153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었다. 다음해에는 예문관검열, 1544년에는 국장도감의 낭관 등을 지냈다.
이어 1546년(명종 1)에 집의(執義), 다음해에는 홍문관의 직제학(直提學)·부제학(副提學)을 역임하였다. 1548년에는 동부승지·좌부승지를 거쳐, 1550년에는 승정원의 도승지에 임명되었다.
이 해 8월 이후 대사간·대사헌을 역임하였으며, 그 뒤에도 이조판서·찬성(贊成)·판중추부사 등 고위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563년 당시의 권신 이량(李樑)이 파직, 유배되자 이량의 일당으로 지목받아 대사헌 이탁(李鐸), 대사간 강사상(姜士尙) 등에게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